의미를 찾은 사람들…“허물면 역사는 사라집니다”

인천시건축사회관·금곡동 초록한의원, 건물 옛 모습 유지한 채 보강
신축보다 복잡한 과정이지만 문화·추억 등 건축물 고유 가치에 집중
▲ 80여 년의 세월이 지나 복원작업을 거쳐 인천시건축사회관으로 탈바꿈한 목조건축물은 인천 근대 건축물의 대표적 활용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29일 인천 중구 인천시건축사회관 모습과 1956년 촬영된 사진을 레이어 합성을 통해 한 장에 담아낸 모습.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인천 건축사들에게 8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2층 목조 건물은 우연히 찾아왔다. 인천건축사회가 십수 년간 숙원 사업이었던 회관 건립 부지를 물색하던 지난 2018년 무렵 중구 항동5가 목조 건물에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옛것을 건축적으로 되살려보자는 공론장이 열렸다. 마침 '뉴트로(New-tro, 새로움+복고)'가 주목받던 때였다. 류재경 인천시건축사회장은 “건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구조적 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면서도 “도시재생과 원도심 활성화, 근대건축물 활용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연한 만남, 지역사회 자산으로

지난해 12월 개관한 인천건축사회관의 1층은 사무처와 북카페, 2층은 회의실과 문화 공간으로 꾸며졌다. 최근까지 식당, 그에 앞서 해방 이후에는 창고 사무실, 시간을 더 거슬러 일제강점기에는 선구점인 '이케마츠 상점'으로 쓰인 공간이다. 1932년 세워진 건물 지붕 내부에는 과거 화재로 그을린 목재와 보강된 철제 구조물이 공존한다.

신축보다 복잡한 과정, 그에 못지않은 비용을 감수한 인천건축사회의 결정은 지역사회가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들여다보게 했다. 작업 과정에서의 역사적 고증은 개항장 한복판 건물의 연원을 밝히는 계기가 됐다. 인천건축사회관은 올해 '인천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홍덕종 인천시건축사회 사무처장은 “건축물은 한번 허물면 영원히 없어진다. 우연한 계기로 다가온 건물을 지역사회 자산으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동구 금곡동 이십세기약방(초록한의원). /이창욱 기자 chuk@incheonilbo.com
▲인천 동구 금곡동 이십세기약방(초록한의원). /이창욱 기자 chuk@incheonilbo.com

▲“건축물에는 사람의 숨이 쌓인다”

근대문화유산과의 공존은 우연에서 싹트기도 하지만, '정든 집'과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동구 금곡동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지나면 '초록한의원'과 '이십세기약방' 간판이 동시에 걸린 2층 건물을 마주한다.

이철완 원장은 아버지의 이십세기약방을 이어받아 2017년 초록한의원을 개업했다. 이 원장은 네 살 때였던 1959년 지어진 건물에 대를 이어 둥지를 틀었다. 그는 “아버지가 마음대로 고쳐 써도 된다고 하시면서도 그대로 살리는 게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셨다”며 “오랫동안 정든 집이고, 새로 지으면 어릴 때부터 살았던 흔적이 안 남으니까 일부만 보강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정성 들여 지은 집”을 천장과 지붕보는 물론, 셔터와 방공호까지 그대로 되살렸다. 어머니의 장롱은 방문으로 쓰고 있다. 이 원장은 “건물에는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흔적이 조금씩 쌓여간다”며 “이십세기약방을 기억하는 손님들도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고 했다.

이십세기약방은 근대건축물이 적잖이 남아 있는 인천에서도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한국인의 손끝에서 탄생해 7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서양식 건축물이자, 개인이 손수 짓고 주민 발길이 끊이질 않은 채 변치 않은 모습으로 남은 공간인 까닭이다.

근대건축물이 생명력을 얻는 원천은 결국 기능성이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이십세기약방은 대를 이으며 건축물의 원래 기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며 “건축물을 특징을 그대로 살려 보수한 인천건축사회관처럼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한 안목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 송학동 카페 히스토리.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인천 중구 송학동 카페 히스토리.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영업만이 아닌 거주 공간으로

인천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근대건축물 활용 사례는 ‘공공=전시관, 민간=카페’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게 대부분이다. 상존하는 철거의 위험은 보존에 급급한 환경을 만들었고, 상상력은 발휘되지 못했다. 틀에 박힌 활용 방식은 지역 활성화로 근대건축물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분법적 활용 구도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은 있다. 중구 송학동 홍예문 돌담 옆으로는 ‘카페 히스토리’라는 이름의 아담한 목조 건물이 있다. 개항장 일대에서 근대건축물을 카페로 꾸민 시초로 꼽히는 집이다. 송진희 히스토리 대표는 “2009년 매입했을 때만 해도 일제강점기 주택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줄 몰랐다”면서도 “내부를 정리하다 보니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기존 모습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카페를 열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히스토리를 영업만이 아닌, 거주 공간으로도 쓰고 있다.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재생이 상업적으로 치우치는 현실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원도심 재생 과정에서 원주민은 떠나고 영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외지인이 유입되면, 유동인구는 늘어나도 상주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 송 대표는 “처음부터 주거 목적으로 매입한 건물”이라며 “오랜 이야기가 담긴 옛 건물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집도 지금 상태대로 잘 보존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인천 중구 해안동 칼리가리 브루잉(맥주공장).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인천 중구 해안동 칼리가리 브루잉(맥주공장).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산업시설 기능 살려 재해석

철거의 주체로도 지적받는 공공과 달리 민간의 근대건축물 활용은 진화하고 있다. 중구 해안동 항만 창고에 들어선 ‘칼리가리 브루잉(맥주공장)’은 산업시설 기능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사례다. 3대째 인천에 사는 토박이인 박지훈 칼리가리 대표는 “학창 시절 신포동 일대가 번화할 때 지금의 공장 주변을 즐겨 찾았다”며 “건물의 유래까지 밝혀내진 못했지만, 건물 자체만 봐도 멋과 활용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설비를 들이고 맥주를 생산한다. 칼리가리에서 빚어진 맥주는 시내 곳곳뿐 아니라 전국으로 뻗어나간다. 원도심에 버려졌던 창고가 시대 흐름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박 대표는 “추억의 장소에서 인천을 알리는 맥주를 만들 수 있어서 뜻깊다”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