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평가·공론화로 거점공간화 서울 회현동 계단집 사례 참고를…조사만 하고 조치 없으면 '도루묵'
▲ 일제강점기 당시 조병창 병원으로 이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인천일보DB

서울 중구 회현동에는 '계단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2층 목조건물이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중물 사업이 벌어진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의 8개 거점시설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가 건물을 매입했고, '주민 공동체 사업가' 과정을 이수한 주민들이 올 1월부터 마을 카페로 운영한다.

근대건축물을 주민 공간으로 바꾼 회현동 계단집은 단순한 재생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서울시는 '역사문화 재생' 전략으로 지난 2017년부터 '회현동 일대 건축자산 진흥구역 지정 및 관리계획 수립 용역'을 병행했다. 건축물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에 이어 역사문화자원이 분류됐고, 150여 차례에 걸친 주민 면담이 진행됐다.

 

▲맹목적 보존논리보다 성공사례 중요

회현동 사례는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근대건축물 조사가 확대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전체 건축물을 조사하고, 역사적 가치를 판단한 후에 보존이 필요한 건물을 지역 주민 참여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철거 방식에서 벗어난 과정을 도시재생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지난해 10월 근대건축물을 철거한 부지에서 구청장이 참석한 '도란도란 송현마을' 도시재생사업 기공식을 연 인천 동구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2001년 국가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도 근대건축물 철거가 되풀이되는 현실에서 서울의 회현동 재생은 '근대건축물 살생부'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건축유산에 대한 전수조사와 객관적 가치 평가,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은 근대건축물과 공존하는 길을 제시한다. 문헌 연구와 문화재청의 근대건축물 현지 조사, 시민참여위원회 협의가 진행 중인 캠프마켓도 비슷한 방식이다. 맹목적으로 보존 논리만 반복하기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살생부를 중구 개항장 등 권역별로 확장해 근대건축물 활용 사례를 제시하면 지역주민 설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 정책은 지자체장 의지”

그동안 인천지역 근대건축물 조사는 기존 문헌을 짜깁기하거나 일부 건축물의 현존 여부만 파악하는 데 그쳤다. 부평구가 이달 초 최종보고회를 열었던 '향토문화유산 전수조사 및 목록화 용역'도 마찬가지다. 용역은 6개월 가까이 진행됐지만, 과거 조사에서 언급된 91개 문화유산의 현존 여부만 확인했다.

조사만 반복하고 후속 조치는 뒤따르지 않은 행정은 근대건축물 철거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부평구에서 일제강점기 식당 건물이 철거됐을 당시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정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보존 가치가 큰 문화유산들은 군·구에서 매입해서라도 보존하려는데, 예산이나 사유재산권 제한 등이 있어 쉽지 않은 사안”이라며 “철거를 앞둔 문화유산에 대해선 군·구에서 공문을 통해 우려를 전달하고 보존 권고하는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근대문화유산인 중구 신흥동 정미소, 내동 공동숙박소 건물이 잇따라 철거됐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근대건축물을 주민 거점시설로 활용하는 서울시와 달리 인천시는 건축유산의 조사사업, 보존·활용을 총괄하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근대문화유산 정책은 결국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