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부두 일대 일제강점기 산업의 축이었던 제염소 등 자리했지만
무관심에 대개 철거 … 민주화 과정 오롯이 품었던 근현대사 거리 무색
인천 동구 만석부두 입구에는 차도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섬과 같은 공간이 있다. 절반은 주유소, 나머지 반은 만석동 과거 사진들로 담벼락이 채워진 곳이다. 지난 5일 오후 3시30분쯤 찾아간 담벼락 안쪽으로는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네모난 굴뚝과 창고 형태 건물이 남아 있던 자리다.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은 “인천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제염소 굴뚝과 건물이 무관심 속에 헐렸다”고 말했다.
제염소는 품질이 좋지 않은 소금을 끓여 재가공하는 공장이었다. 1910년을 전후로 만석동 일대에는 제염소가 잇따라 들어섰다. 천일염전이 1907년 주안에서 시험 생산된 이래 일제강점기 내내 대규모로 개발되기 전까지 제염업은 정미업·양조업 등과 산업의 한 축이었다. 만석동은 원래 갯벌이었다. 1906년 일본인 사업가가 바다를 매립하면서 만석동에는 제염소를 비롯한 공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석부두 입구에서 동일방직 담벼락을 따라 남쪽으로 500여m 걸으면 만석동 행정복지센터 부근에서 100년 전 공장지대를 마주한다. 옛 아리마 정미소 터다. 정미업은 일제가 지방에서 쌀을 끌어모아 반출시키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장 소장은 “1920년대 만석동과 함께 정미업이 팽창했던 신흥동 오쿠다 정미소 건물도 올 초 철거됐다”며 “산업유산은 철도·항만 등과의 연계성을 통해 도시 구조를 파악할 수 있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생활 공간과 함께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폐허가 된 오쿠다 정미소는 인천시가 2016년 작성한 '인천근대문화유산' 210개 목록에 들어 있었다. 동일방직 남쪽 철길 옆으로 남아 있던 다카스키 장유 양조장도 마찬가지다. 만주까지 수출되는 간장을 생산했다던 공장 자리에는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근대산업유산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길목마다 벽돌이 세워진 담벼락을 마주한다. 1934년 동양방적으로 조업을 시작한 동일방직 인천공장이다. 1930년대 노동자의 삶을 조명한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 무대이자,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한 획을 그은 공장이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박제된 역사가 아님을,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생산 설비가 옮겨지고 창고로 쓰이면서 평상시 잠겨 있던 동일방직 정문은 이날부터 시작된 할인 행사로 잠시 문이 열렸다.
만석동에서 화수동으로 이어지는 산업유산 여정은 스페이스빔이 주최한 '2020 배다리 도시학교,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동일방직에서 일꾼교회(옛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 이르는 700여m의 거리다.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지금은 적막한 구도심의 사라져가는 거리가 됐지만, 이곳은 개항 이후 종속적 산업화의 유산과 민주화 과정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근현대사의 역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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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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