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안정 뒤 자립 유도…수원형 정책 '탈노숙' 효과

사업 실패로 노숙까지 몰린 50대
꿈터 입소 뒤 고시원 등 도움 받아

미화직 취업…LH 임대 주택 참여
결국 예산 문제…정부 지원 필요

경기도내 각 지자체가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회에 복귀하는 사례가 손꼽히는 것은 그들을 '사회 구성원'이 아닌 '지원대상'으로만 여기는 풍토와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5년 노숙인이 늘어나는 추세에 '주거 정책'에 방점을 둔 수원시의 성공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인 '주거'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원시에 앞서 해외에서도 탈(脫) 노숙에 효과를 거둔 정책이다.

이모(55)씨는 2년 전까지 수원역 노숙인이었다. 지금은 한 기업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집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휴일엔 수원역 노숙인의 자립을 돕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업 실패로 노숙에 몰린 이씨는 지난해 1월 수원다시서기종합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이씨는 즉시 센터 도움으로 일시적인 잠자리가 있는 '꿈터'에 입소했다.

다만 이씨는 선천성 피부질환으로 여러 명이 이용하는 시설의 적응이 어려웠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매달 30만원씩 최대 4개월간 비용을 받아 고시원이나 원룸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수원시의 '임시주거지원 사업' 덕이다. 센터는 또 지역의 한 백화점 미화직에 그의 취업을 도왔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닦여지자 이씨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사업'에 참여, 일시가 아니라 장기적인 집을 마련했다.

해당 사업은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LH가 매입하거나 임차해 수리한 후 노숙인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수원시가 LH와 '업무협약'으로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일자리 활동 등 자립 요건을 갖춰야 자격이 부여된다. 얼마 전 더 큰 규모의 사업장으로 일터를 옮겼고, 지금은 '노숙인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휴일 수원역을 찾아 노숙인에게 자립경험을 바탕으로 센터입소 등을 안내하는 일이다.

수원시는 거리 생활 노숙인에게 시설이나 임시 주거를 제공하고, 나아가 개인이 집을 얻는 사업으로도 연계하고 있다.

노숙인이 불안정한 가장 큰 배경이 주거이므로, 그걸 해소한 뒤 취업 지원 등 단계로 실행한다는 취지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시설(재활·요양 등) 입소에 그친다.

지난해 기준 98명의 임시주거 지원자 중 38명이 '주거 유지'를 했다. 약 40%가 스스로 돈을 벌거나 기초수급 등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2018년 기준은 43%다. 매입임대주택은 89가구 중 약 77%인 69가구가 안정적으로 생활했다.

서울시도 자체적으로 전용면적 15∼30㎡인 원룸형 연립주택을 공급하면서 노숙인 주거안정에 앞서고 있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해외 선진국 사례를 일부 벤치마킹한 결과다.

핀란드는 1990년대 노숙인 증가가 심화하자 원인을 '주거 상실'로 지목하고 지자체·시민단체와 새 지원 모델을 도입했다. 집 제공 뒤 자립을 돕는 일명 '하우징 퍼스트'다. 그 결과 노숙인 수가 크게 줄었다.

노숙인 예방 대책은 사회적 비용 절감과 연결된다는 결론도 있다.

캐나다는 2006년 이후 61개 지자체와 주거지·생활비 지원과 취업·치유 프로그램 운영 등 정책을 추진했다. 그 효과로 노숙인 대책비용이 7분의 1수준까지 감소했다.

다만, 일자리·회복 등 연계 시스템 없이 무작정 집만 주는 정책은 사회 정착 없이 '집 있는 노숙인'을 양성하는 부작용을 유발한다.

이 밖에 '교육'도 사회 복귀의 해법으로 제시된다.

수원시가 2013년부터 한신대와 교육을 실행한 결과, 2018년 기준 수료생 중 57%(109명 중 63명)가 새 삶을 얻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돈이 문제다. 정부가 예산지원을 일절 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새 모델을 선뜻 도입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히려 지난해 수원 교육예산을 '성과미달' 이유로 삭감해 활동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년 노숙탈출 성공…"대기업 출근, 집도 생겼죠"

뇌병변장애 안고 보육원 나와
구걸이 최선책이었던 그에게
수원시, 치료·직장 지원 '자립'

대기업 정규직 합격…집도 생겨

"예전의 나같은 이웃 돕고싶어
퇴근 후에는 공무원 공부 중"

▲ 거리생활과 노숙인 신분을 벗고 대형마트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모(39) 씨가 20일 오전 수원의 한 마트 창고에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
▲ 거리생활과 노숙인 신분을 벗고 대형마트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모(39) 씨가 20일 오전 수원의 한 마트 창고에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삶을 다시 찾았어요. 이제 저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죠.”
유년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20년 이상 '노숙인'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어엿한 직장에 다니며, 자기개발에 몰두하는 '제2의 삶'을 찾았다.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수원에 사는 권모(39)씨의 이야기다. 오랜 노숙인 신분이었던 권씨는 뇌병변 5급 장애를 갖고 있다. 일찍 부모에게 버려지며 영문도 모른 채 보육원에서 자랐다. 몸이 불편해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12살 되던 해에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권에 있으면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 믿고 고향인 옥천을 떠나 수원역을 찾았다.

하지만 거리 생활은 생각보다 더욱 혹독했다. 나이가 어리고 몸도 성치 않다 보니 일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구걸이 전부였다. 돈이 조금 모이면 소위 '노숙인 패거리'가 득달같이 찾아와 뺏어가곤 했다. 너무 배가 고파 돈을 안 빼앗기려 발버둥 쳤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집단 매질이었다.

그렇게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25살의 어느 날. 수원시 지원제도와 접하게 된다. 새로운 삶의 첫발이었다. 당시 지원센터의 김대술 신부는 “아직 기회는 있다”며 손을 내밀었고, 그는 김 신부의 손을 붙잡았다.

이후 시급한 순서대로 종합 지원이 시작됐다. 우선 권씨는 경기도의료원과 서울의료원을 오가며 진단 및 수술을 받았다. 질병 등을 근거로 기초수급자 등록과 일자리도 지원받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내 집'이었다. 권씨는 꾸준히 모은 돈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에 안착했다. 2013년에는 '탈수급(정부의 생계급여 등을 안 받는 대상으로 전환)'까지 도달했다.

사회에 홀로 섰지만, 장애라는 편견의 벽은 높았다. 권씨는 개의치 않았다. 틈나는 대로 편의점 등에서 꾸준히 일하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그렇게 5년. 2018년 유통 대기업 정규직 '장애인 특별전형' 모집에 도전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20일 일터에서 만난 권씨는 “노숙인은 내가 원하지도, 택하지도 않은 삶이었다. 거듭되는 불행과 좌절 속에 지원제도와 마주쳐 여기까지 오게 됐다. 너무 행복할 따름이다”며 웃음 지었다.

그는 불쑥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중·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권씨는 요즘 책과 인터넷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다. 노숙인 등 어려운 처지의 '또 다른 나'를 직접 돕고 싶 어 결정한 꿈이다.

권씨는 “사회가 나를 도와준 고마움을 보답하려면 내가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도와야 하지 않나 싶다”며 “퇴근 후에 '열공' 중인데, 영어가 좀 어렵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배워서 힘차게 도전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씨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단순 '시설입소 보호'가 아니라 노숙인 개개인이 자립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제도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수원에서 지원받기 전에 노숙인 수용 시설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냥 숙식만 받으니 답답하고 눈치 보여서 나오게 되더라고요. 단순히 어디에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자리 연계 등 시스템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자활·재활 중심 노숙인시설, 주거지 형태로 개선해야”

▲임정기 용인대 사회복지과 교수
▲임정기 용인대 사회복지과 교수

“노숙인의 기본적인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존 복지체계를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부처나 기관 간 협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임정기(사진)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숙인은 주거권을 상실한 사회적 약자다. 우리 모두 언제라도 그런 노숙인이 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임 교수는 노숙인 지원제도와 관련, 폭넓은 연구경력이 있는 국내 몇 없는 전문가다. 효과적인 '노숙인 지원 모델' 도입을 위한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외 사례를 일일이 찾아내 분석한 적도 있다.

보통 길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을 노숙인으로 한정해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갑작스레 닥친 IMF 탓에 다수의 직장인이 실업자로 전락한 이후 노숙인은 알코올 중독을 겪는 사람부터 고시촌 등 주거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등 다양화됐다.

'누구나 언제라도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임 교수가 강조하는 이유다.

임 교수는 “노숙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주거다”며 “이들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지만, 부족한 재정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주거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기존 시설의 주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 기능 강화는 기존 노숙인 시설(자활·재활 등)을 주거지 형태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 시설의 경우 프로그램 참여 등을 독려하는 단순 시설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임 교수는 시설에서 규칙을 두기보다 노숙인 개개인을 위한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봤다.

임 교수가 힘주어 주장하는 것은 '지원주택'이다. 이는 단순 주거지원과 구분된다. 주거지원의 경우 재정 여건상 어려운 데다가 자활에 실패했을 때 노숙인이 겪는 상실감 등 부작용이 따른다. 이럴 경우 악순환은 반복되고, 제도의 정당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임 교수는 현재 주거 기능이 약한 기존 시설이 이 같은 현실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기존 시설을 지원주택으로 개편하면서 소규모의 지원주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전히 주거 기능 중심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 이후 노숙인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노숙인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복지체계를 갖춰 이들에 대한 주거지원이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는 “이를 위해선 다수의 부처나 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노숙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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