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만 선비? 동학도라면 누구나 선비!
▲ 경주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쯤, 구미산(龜尾山) 자락에 위치한 천도교 발상지 용담정(龍膽亭).

 

'선전관 정운귀의 서계'에 보이는 '시천주(侍天主)'는 동학의 핵심으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한울님은 초월자이나 부모님같이 섬길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으로 본다.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따라서 선생의 한울님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함과 동시에 인간 밖에 존재하는 초월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신관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자신의 종교 체험이 무속적인 원천에 뿌리박고 있다는 주장과 접맥된다고 보인다. 정운귀의 장계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들이 칭하는 최 선생이란, 아명은 복술이요 관명은 제우이며, 집은 이 고을 현곡면 용담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5~6년 전에 울산으로 이사가 무명(白木) 장사로 살았다고 하는데 홀연히 근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후 때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를 말한답니다.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치성드리는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자 공중에서 책 한 권이 떨어지므로 이에 따라 학(學)을 받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정운귀는 “공중에서 책 한 권이 떨어지므로 이에 따라 학(學)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책이 <동경대전(東經大全)>에 수록된 '논학문(論學文)'인 듯하다. 동학이 단순한 신앙이 아닌 학문임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동경대전>에는 이 외에 '포덕문(布德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然其然)', '축문(祝文)', '주문(呪文)', '입춘시(立春詩)', '절구(絶句)', '강시(降詩)', '좌잠(座箴)',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팔절(八節)', '제서(題書)'가 수록되어 있다.

선생은 동학도들을 '도유(道儒)'라 칭하였다. 동학을 믿는 사람들을 유자(儒者), 즉 선비라 하였다. 양반만이 선비가 아닌, 누구나 동학을 하면 선비라는 말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제 차례를 좇아가며 글을 독해해보겠다.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포덕문'

'포덕'은 덕을 널리 편다는 의미다. 선생이 도를 깨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서양 종교가 들어오고 선생의 득도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만 보겠다. 선생의 득도는 필자가 운운할 바 아니다. 다만 선생은 서양 열강의 침략과 천주교가 들어오자 꽤 혼란스러워했고 이에 대한 고민이 동학을 창시케 한 동기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또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제하고 천하 사람들에게 덕을 펴려는 데 동학의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생이 말하는 경신년이 바로 동학이 창시된 1860년이다.

“경신년에 접어들어 전해 들으니 '서양 사람들이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면서도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러할 까닭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뜻밖에도 4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병이라 해도 무슨 병인지 알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즈음이었다. 어떤 신비스러운 말씀이 갑자기 귀에 들렸다. 깜짝 놀라 일어나 소리 들리는 쪽으로 향하여 물으니 대답하시었다. '두려워 말고 두려워 말라. 세상사람이 나를 한울님이라 이르거늘 너는 한울님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셨다. '나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려 한다.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묻기를, '그러면서 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다. 나에게 영부(靈符·신비한 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신묘한 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太極·우주의 근원)이요, 또 형상은 궁궁(弓弓·태극 모양)이다. 이 영부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하셨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