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사각 해소·골든타임 확보 … 대책 시급하다

'초등학생 형제 비극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도 해맑은 모습을 보여 왔던 어린 형제의 아픔은 어른들 가슴을 후벼판다.

그렇다고 속앓이만 할 수는 없다. 돌봄 사각지대 해소와 인명 구조 골든타임 확보, 화재 취약계층 피해 예방, 화상전문병원 유치 등 이번 화재사고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시급히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매번 되풀이되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다. 화재 대응·돌봄·교육·의료 등 각 분야 전문가 4인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돌봄빈틈 채울 것은 마을·이웃의 관심”

'마을교육공동체 구축 사업' 제안

▲임병구 석남중학교 교장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임병구 석남중학교 교장은 27일 이 속담을 언급하며 돌봄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 전체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임 교장은 초등학생 형제 화재사고를 통해 돌봄과 교육 복지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돌봄 사각지대와 법의 한계점이 대표적이다.

“크게 보면 교육청이 학교 안 학생을 살피고, 학교 밖에서는 지자체가 아이들을 살핍니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로 법으로도 도움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형제 사고도 주변 이웃들이 아동 학대를 신고했지만 결국 부모 뜻을 따를 수밖에 없어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임 교장은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마을교육공동체 구축 사업'을 제안했다. 교육청과 지자체, 마을이 하나로 뭉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업이다.

“돌봄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마을과 이웃의 관심입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동네 돌봄센터에 모여 친구들과 놀거나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사회 시스템이 보완돼야 합니다.”

이와 함께 임 교장은 관련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형제 사고도 학교와 지자체가 돌봄 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 입소를 제안했지만 친모가 거절하면서 결국 큰 화로 이어졌다는 게 임 교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선 부모 친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으로 학대를 당하는 아동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위험에 빠진 아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선 협조를 거부할 경우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공공이 책임지고 돌봄을 맡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가정돌봄 불가능할 땐 보호자와 분리를”

법 개정·지역아동센터 이미지 등 지적

▲김영인 꿈동산지역아동센터 대표

“가정 내 돌봄이 불가능할 경우 아동 인권을 위해서라도 보호자와 분리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꿈동산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김영인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는 초등학생 형제 비극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인물이다.

센터와 5분 거리에 형제 집이 위치해 화재사고를 직접 목격했을 뿐 아니라 평소 아이들이 동네를 오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그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 원인으로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위기에 놓였을 때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는 법적 강제성이 약한 점을 꼽았다. 각종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인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천 초등학생 형제의 경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하려다가 코로나19 탓에 상담조차 못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관 측에서 부모의 자녀 돌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다른 돌봄 체계를 마련해 지원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낙인 이미지'도 돌봄 사각지대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이거나 한부모·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센터는 사정이 어려운 취약계층 아동들이 다닌다는 이미지 탓에 이용을 망설이는 부모들이 종종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형제가 지역아동센터라도 다녔더라면 끼니나 간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안타까웠다”며 “11년간 센터를 운영하면서 이용 아동이 주로 저소득층이라는 이유로 등록을 망설이는 부모들을 자주 봤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이유로 일반 아동도 받고 있지만 정원이 다 차면 오히려 저소득층 아동이 오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다”며 “시설 이용 자체만으로 낙인감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이용 계층을 다양하게 확대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저층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의무화를”

화재경보기 설치·안전교육 강조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27일 “인천 초등학생 형제 화재사고를 계기로 새로 짓게 될 저층 공동주택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존 주택은 단독경보형 감지기(주택용 화재경보기)와 같은 기초 소방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프링클러는 1992년 개정된 소방법에 따라 16층 이상 아파트에만 적용됐으나 2005년에는 11층 이상, 2018년부터는 6층 이상 아파트 모든 층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강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저층 공동주택에 대한 설치 의무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신규 저층 주택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기존 저층 주택은 주택용 화재경보기를 설치해 화재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도 했다. 화재경보기는 화재와 연기 등을 감지하면 경적을 울려 사람들이 화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 교수는 “노후 주택의 경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니 기초 소방시설을 설치해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생생한 안전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긴급 상황에 부닥쳤을 때 아이들이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의 교육이 요구되며, 특히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하는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번 화재사고처럼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집에 있다가 불이 났을 경우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선 평소 가정에서 안전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주거 환경에 따라 대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활권 안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주기적으로 놀이 형식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중증 화상환자, 신속·적절한 치료해야”

인천 화상전문병원 필요성 제기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화상전문병원은 당연히 300만 대도시 인천에 있어야 합니다. 화상 치료가 인천시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이기 때문입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27일 인천 초등학생 형제가 중화상을 입은 용현동 화재사고와 관련해 화상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 원장은 “과거 인천 대형병원에서도 화상 치료를 했었다”며 “그러나 현재 대형병원들은 치료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화상 치료를 기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화상환자는 거의 매일 화상 부위를 치료받아야 한다. 심한 화상을 입었을 경우 피부 이식 수술도 받게 된다.

그러나 중증 화상환자를 치료하는 화상전문병원이 인천에 없는 탓에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부상자들이 화상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대형병원들은 화상을 입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응급 처치한 뒤 서울 화상전문병원으로 전원 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상전문병원은 화상 치료에 특화된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외과·정형외과·내과·성형외과 등이 협진 체계를 이루고 있어 입원 초기부터 전문적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 원장은 지역 민간의료 영역에서 화상환자를 돌볼 수 없다면 공공의료 기능 강화로 의료 공백을 메우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가령 지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제2인천의료원 건립 문제를 화상치료센터 개설과 연계해 풀어나가는 등 정책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조 원장은 “화상 치료는 응급의료에 포함되는 필수 의료다. 특히 중증 화상환자들에겐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며 “지역사회가 화상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문 의료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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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 아동비극 이제는 끝내자 인천 초등학생 형제 화재사고가 발생한 지 14일째를 맞은 가운데 화재로 크게 다친 형제가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보호자가 집 안에 있었더라면,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돌봄을 받고 있었더라면, 소방당국이 아이의 구조 요청에 탄력적으로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사고였다. 사고가 나기 전 해당 지역 화재 통계가 다세대주택의 화재 취약성을 경고해왔던 것도 탄식이 나오게 하는 대목이다.각계 전문가들은 같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화상환자 치료 공백을 메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