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5월17일 필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장에서 북한의 가입이 표결로 가결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엔을 위시한 국제기구에서 북한과의 표대결을 외교의 지상목표로 삼아온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현실을 인정해야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제네바에서 국제기구를 담당하던 박동진 대사도 본국 정부의 훈령에 따라 북한의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29년후인 2002년 이종욱(1945~2006) 박사의 WHO 사무총장 피선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격상시킨 쾌거였다. 26세의 늦은 나이에 의대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성라자로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레이코와 결혼했다. 그후 WHO의 태평양 지역사무처를 거쳐 본부에서 간부로 일하다가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으나 안타깝게 2006년 요절했다. ▶이 박사는 사무총장에 취임 직후 “WHO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WHO가 새로운 질병에 발빠르게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하면 각국 정부는 즉각 WHO에 통보해야 하며 WHO의 지시에 따라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여행을 금지하는 등 국제보건규칙도 개정했다. 빌 게이츠도 평가했던 이 박사를 '아시아의 슈바이처' 또는 '백신의 황제'로 부르는 것은 의사로서 일생을 오지에서 일하고 WHO의 수장으로 개혁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팬데믹의 와중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WHO를 공박하고 탈퇴를 선언하여 세계보건기구의 위상이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초기확산시에 WHO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은 유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기도 하다. 194개국을 회원국으로 포용하고 있는 WHO의 연간 예산은 48억 달러에 달하는데 미국이 22%를 분담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 안건을 결정하는데는 회원국 모두가 동등하게 한 표씩을 행사한다. ▶한국 출신 이종욱 박사 이후 WHO의 수장이 현장과 본부에서 실무를 익힌 의사보다는 외교관과 정치인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도 미국의 불만이었다. 전 세계 150개의 지역사무처에서 7천여 명의 의료전문가들이 일하는 WHO에서 탈퇴하여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예산 증액과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합당한 길일 것이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