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지자체, 빠른 대책·새로운 검사...'K방역' 일등공신

감염병 대응, 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요성 부각
수원 확진자 동선 공개·입국자 관리시스템 앞장
고양 안심카 선별진료소 '국제표준화 모델' 유력
마스크 나눔·드론방역·임대료운동 등 시민의식도
▲ 고양 안심카 선별진료소
▲ 고양 안심카 선별진료소

'코로나19 사태'는 뜻밖의 교훈을 알렸다. 지방자치단체 역할의 중요성이다. 시민안전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는 물론 획기적인 검사·보호방법, 제도개선까지. 모두 지역으로부터 출발했다. 시민들도 방역과 예방활동에 나서며 '우리 마을 지킴이'를 자처했다. 효과는 뚜렷했다. 발병부터 해소까지 중앙의 지시 없이 꼼짝도 못 했던 '감염병 대응'의 역사가 완전히 뒤집혔다.

▲“시민안전에 앞뒤 없다”…발 빠른 지역

지난 1월22일. 염태영 수원시장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수원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1보'라는 제목으로 태스크포스(TF) 구성, 선별진료소·음압병동 점검 등 시의 대책을 담았다.

대책 안에는 특히 '정보공개'가 있었다. 모든 홍보수단으로 대응요령을 전파하고, 확진자 발생 시 동선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염 시장은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과잉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당시 국내 상황은 이틀 전 첫 코로나19 확진자(중국 우한 입국여성)가 발생했지만, 지역은 큰 소란이 없었다. 위기경보단계가 지금 '심각'보다 두 단계 낮은 '주의' 수준이었고, 지자체들은 정부의 방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민들은 목전에 둔 설 연휴를 기대했다.

이 때문에 수원시 방침을 놓고 '잘했다'는 대부분의 칭찬과 동시에 '너무 오버한다'는 일부 악평도 나왔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점, 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원시가 첫발을 뗀 확진자 동선 공개가 다른 지자체까지 도입된 상태였고, 시민들은 내용을 토대로 제각각 대처할 수 있었다. 애초 확진자 동선 공개는 지방이 아닌 중앙의 권한이다.

'5년 전 과오'를 씻어낸 순간이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는 지자체들이 정부의 '정보 미공개 방침' 때문에 제때마다 상황을 알리지 못했고, 시민들은 어디에 감염위험이 있는지도 모른 채 불안했어야 했다.

수원시는 이 밖에도 유스호스텔(숙소동 30객실 1·2층)을 활용한 '임시생활시설', 호텔 '안심숙소' 마련으로 확진자 접촉 또는 우려 대상자가 편하고도 효율적으로 격리하면서 묵도록 도왔다.

기초단체가 '역학조사관'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일구기도 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 초기에 원인과 특성을 조사해 유행을 차단하는 '골든타임'의 핵심 역할인데, 기초단체는 채용조차 안 됐다.

수원시는 메르스 이후 꾸준히 정부에 역학조사관 운영 권한 이양 등을 건의했고, 지난 2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9월부터는 기초단체도 역학조사관을 두고 대응할 수 있다.

5만6000여명에 달하는 외국인 인구로 '전국 최고 다문화도시'로 불리는 안산시는 그 배경 탓에 감염 취약 우려가 있었으나, 철저한 자체 방역시스템으로 극복했다.

'자가격리 해제 전 진단검사', '영상통화 등을 활용한 자가격리자 특별 관리'를 도입해 위험성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시는 보건소진료실과 선별진료소를 잇는 '화상진료'를 통해 의심환자 동선으로 인한 감염위험을 줄였다. 또 방역복을 갈아입고 소독하는 시간도 줄여 신속한 진료를 가능하게 했다.

이들 지자체가 벌인 노력은 시민들이 “도와줘서 감사하다”며 편지를 보내는 등 화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각계로부터 '우수사례'로 인정받아 다른 지자체들의 방역 가이드라인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수원 중국 유학생 수송버스
▲ 수원 중국 유학생 수송버스

▲K-방역, 지역도 '숨은 공신'

한국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면서 곧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K-방역이다. 이 부분도 지역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고양시 '안심카 선별진료소'가 있다. 운전자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문진→ 검진→ 검체 과정을 간편하게 소화 가능한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햄버거 등을 주문하고 받는 '드라이브스루'에 착안했다.

기존 보건소 및 병원의 선별진료소는 자차 또는 구급차 이동→ 대기공간에서 접수 및 대기→ 진료실에서 진료 후 검사까지 과정에 최소 30분~최대 2시간까지 소요된다. 반면 안심카 선별 진료소는 승차한 채로 모든 검사과정이 10분 이내다. 이 덕에 일반 진료소는 시간당 2건, 하루 20건 정도 검체 채취가 가능한 일반 진료소와 달리 안심카 선별진료소는 하루 400건 이상 검진을 소화한 적도 있다. 공용주차장 등을 활용해 비용도 1500여만원 정도면 설치할 수 있다.

해당 시스템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표준화 모델' 중 가장 유력한 후보다.

제도적 변화 등 뚜렷한 결과물이 없어도 '한국을 오면 지켜준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지역 사례는 더욱 많다. 예를 들어 수원시는 2월부터 기초단체 최초로 중국 유학생에 대한 대책을 벌였다.

수원에는 중국 유학생이 857명에 이르지만, 정부에서는 개학을 앞두고 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시는 공항에 유학생 안내요원과 수송버스를 배치했다. 기숙사는 미리 검사·방역장비를 갖췄다. 유학생을 버스에 태워 목적지(학교)까지 태워준 뒤, 기숙사에서 검사 및 14일 동안 자가격리(1인 1실)하는 절차다. 자가격리에 동의하지 않는 유학생들은 학교 담당자가 매일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만약 유증상자가 발생하면 보건소 구급 차량 수송부터 검체 채취 및 검사 의뢰까지 완벽한 대응라인을 구축했다.

이후 중국에서 관련 대책이 시작되며 유학생 대상 코로나19 유행 등 우려했던 부분들을 막아냈다. 시의 노력은 많은 유학생을 안심시켰고, 입소문이 중국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를 바라보는 중국 인식은 차하얼학회 등 현지에서 시의 방역을 응원하며 직접 마스크를 보내는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시는 전국적으로 해외입국 확진자가 증가하자 선거연수원에 무증상 해외입국자 임시검사시설을 설치했다. 공항에서 자택까지 일반인의 접촉 없이 '수원형 해외 입국자 관리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해당 대책도 기초단체 최초다. 코로나19 무증상 해외 입국자의 지역사회 감염 차단을 위한 이 검사시설은 타 시·군의 벤치마킹이 쇄도하는 등 대외적 호평을 받았다.

▲ 수원 학생 드론방역 앞장
▲ 수원 학생 드론방역 앞장

▲뛰어난 '시민의식'도 한몫

지역을 코로나19로부터 지켜낸 건 지자체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자신이 주체가 돼 다른 시민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진 지난 3월,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에 있는 수원시여성가족회관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스크 만들기'에 동참한 이들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은 내부 재봉실에 모여 마치 공장처럼 마스크를 만들어냈다.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하고, 라텍스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재단과 재봉, 고무줄 끼우기와 포장작업까지 분업화됐다. 기계를 통해 살균작업을 거쳐 항균 스프레이까지 뿌린 뒤 하나씩 낱개 포장됐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마스크는 저소득층 등 마스크가 절실한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드론 방역'이라는 이색적인 봉사도 있었다. 사람과자연협동조합이 방제용 드론 2대를 제공하고, 드론 조종사 자격증을 소지한 수원농생명과학고 '더드론' 동아리 학생들이 재능기부로 방역에 나섰다. 드론은 장안구에 있는 42개 학교 구석구석을 방역했다.

또 확진자 접촉자 임시생활시설, 무증상 해외입국자 임시검사시설이 있는 서둔동 주민들은 수원시가 시설을 사용하기 전 양해를 구하자 “어려움을 함께 나누겠다”고 협조를 약속하며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지난 2월 중국 우한 귀국 교민의 격리시설로 이천 국방어학원이 결정된 것과 관련해서도 당시 이천 장호원읍 주민들은 “우한 교민도 다 같은 한가족”이라면서 받아들였고, 더불어 “편하게 쉬도록 우리가 잘 배려하자”는 여론까지 일었다.

경기지역에 열풍이 불었던 '착한 임대료 운동'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수원시 영통구 상인회 대표와 건물소유주는 '착한임대료 자율참여 운동' 협약식을 개최하고 골목상권 임대인을 중심으로 자율참여를 독려한 바 있다. 건물소유주들은 2~3월의 임대료를 최대 30%까지 내렸다.

성남시재향군인회는 회관 건물 내 11개 점포의 임대료를 10~20%씩 내렸으며, 성남시새마을회와 성남시호남향우회도 회관 건물에 입주한 음식점의 임대료를 월 50만~100만원씩 깎아줬다.

이천시 부발읍 신하리의 상가를 소유한 임무빈씨는 5개 점포 임대료 33%를, 아미리 소재 상가 건물주 김영숙씨도 20%를 인하했다. 아예 한 달 임대료를 면제해준 건물주도 있었다.

구리시 전통시장에 24개 점포를 소유한 건물주는 3개월간 임대료를 30% 낮췄고, 시흥시 정왕시장 건물주 40여명은 상인들에게 한 달 임대료를 50% 인하하기로 결정하는 등 '상생 행렬'이 이어졌다.

건물주들은 하나같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상인들의 고통을 함께 분담하자”고 말했다.

고양시에서는 시민들이 코로나19 관련 '인권보호'에 나서고 있다.

청년인턴 등으로 구성된 '코로나19 고양시 인터넷 방역단'은 시가 공개한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중 정부지침 공개기간이 지난 상태로 인터넷 카페, 블로그, 각종 커뮤니티에 떠도는 확진자 정보를 찾아내 삭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고양시 확진자 동선 삭제 시민제보란'을 개설, 시민의 제보를 통해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이를 통해 7월6일 기준 공개일이 확진자 정보 총 238건을 삭제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메르스 사태 큰 교훈...신감염병 대응 '단서'

수원시 시민들이 방역에 나선 모습. /제공=수원시
수원시 시민들이 방역에 나선 모습. /제공=수원시

'에볼라', '메르스', '사스', 그리고 '코로나19'. 수많은 인명피해를 동반하며 전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감염병은 끊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하지만 지역은 강해졌다. 시민들은 서로를 지켰고, 지자체들의 대책은 빠른 데다 혁신적으로 진화했다. 미래의 감염병 대처, 단서가 여기에 있다. 수원시는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이 같은 내용을 하나하나 '백서'에 기록했다. 지금은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된 이 책으로 성찰과 반성, 교훈 등을 알아보자.

▲감염병, 소통이 해답

5월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후, 질병관리본부는 병원명을 공개할 경우 발생할 여러 우려를 이유로 이름 등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대응해야 했기에 시민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유언비어와 괴담이 SNS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불안감이 증폭됐다. 현장은 언제나 상부의 지시보다 빠르게 움직이지만, 지침숙지 미비와 늦은 하달로 의료기관 간의 갈등은 물론 역학조사관과 연락 자체가 불통이었다. 메르스와의 싸움 이전에 우리는 '소통'과 싸워야 할 정도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84.7%가 정부의 메르스 대처방식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응답했으며, 그 원인으로 '초동대응 실패', '투명하지 못한 정보공개', '국민과의 소통부재'를 지적했다.

수원시는 시민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오늘의 상황', '상담전화'. '상황보고 드립니다', '추진상황', '시민의견란' 등 메뉴로 구성했다. 시민들의 불안은 식었고, 시를 응원했다.

감염병과 같은 공중보건위기상황에서 방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중은 보호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 함께 헤쳐나가는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대부분의 키워드는 '소통'을 통해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일이었다는 걸 잊지 말자.

 

▲공공의료 과제 풀어야

메르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기한 공공의료 관련 과제는 크게 3가지다. ▲국가방역체계의 역량 강화 ▲공중보건 전문인력 양성하고 적절하게 배치하기 ▲의료전달체계 및 의료이용문화 개선이다. 즉,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이를 이끌어갈 의료체계와 지역사회를 준비시키는 일이다.

 

▲지역보건소 기능과 역할 재조명

지역보건법은 보건소 역할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보건의료 관련기관, 단체, 학교, 직장 등과의 협력체계 구축'이다. 메르스 사태 동안 보건소는 과연 지역 보건당국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보건소가 공공의료기관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고 진료업무, 공공보건 분야 기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지역 의료자원을 총괄적으로 기획·조정·연계·관리해 지역을 살리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수원시 '메르스 일성록 69일' : 메르스 발병 기간인 2015년 5월 20일부터 7월 28일까지 69일 동안의 수원시 대응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무려 500쪽 분량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을 찾았을 때,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전달받아 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