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정치부장

 

지난 1일 '인천애(愛)뜰' 광장이 문을 열었다.

시멘트로 덮여 있던 인천시청 앞은 푸른빛이 감도는 커다란 원형 잔디밭으로 변했다. 정문도 없어졌다. 청사 앞 미래광장까지 시원하게 하나의 정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1985년 구월동 시대를 열었던 인천시청이 34년 만에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됐다.

평소 시청을 드나드는 차량들과 각종 민원인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던 청사 정문도 잔디밭과 아름드리 은행나무로 미래광장과 연결됐다.

환경이 변하면 풍경도 변하는 법. 점심때면 손에 도시락과 커피를 든 공무원과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잔디밭을 거닐거나 은행나무 밑 그늘에 앉아 정담을 나눈다. 피크닉 테이블과 벤치가 곳곳에 놓아져 휴식의 운치를 더해준다. 아직은 낯설지만 조만간 익숙해질 모습이다.

인천애(愛)뜰은 그동안 단절됐던 공간을 '시민들의 소통·휴식·문화 공간으로 돌려준다'는 취지에 맞게 밑그림부터 활용안까지 오롯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담았다.

인천애(愛)뜰이란 이름도 시민 공모와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제안자인 시민 강태원씨는 지난 6월4일 '500인 시민시장 토론회'에서 진행된 제안 설명에서 "인천 시민들이 가족처럼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얘기할 수 있는 뜰을 생각했고, 가족의 사랑을 상징하는 애(愛)를 넣었다"고 말했다.

시청 담장을 허물고, 정문 앞 로터리를 폐쇄하고, 잔디광장을 꾸민 것도 모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인천시는 인천애뜰과 중앙공원을 연결해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거대한 도심 속 숲길로 만들자는 시민 의견도 반영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새로 꾸며진 바닥분수 광장 주변 등 인천애뜰 곳곳에서는 버스킹 공연과 야외 결혼식은 물론 벼룩시장, 전시회, 생활체육활동 등 다양한 문화·체육행사도 가능하다.

오는 8일부터는 주말 밤마다 청사와 데이터센터 벽면을 무대로 한 미디어 쇼와 인천애뜰 곳곳의 나무에 은하수가 쏟아지는 조명을 연출해 인천 야경 명소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인류의 역사는 광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이 있었고, 르네상스시대 도시들도 성당 앞 광장이 중심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쇠퇴했지만 광장은 20세기 후반 시민들의 산책과 쇼핑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라 수도인 경주 월성 북쪽의 주작대로가 바로 신라시대에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광화문 앞도 하나의 광장이었다. 명령을 전달하고 벌을 주며 국민을 통치하는 정치를 위한 장소였다.

예전 여의도 5·16광장도 마찬가지다. 100만 명을 동원해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거대한 광장으로, 권력자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탄생했다.

1987년 민주화의 운동과 함께 광장은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곳으로 발전한 것이다.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에서 등장한 길거리 응원문화는 광장 사용의 주도권이 권력자에서 대중으로 바뀌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촛불집회는 광장의 시민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역할을 해오던 광장의 모습도 이제 '힐링·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대를 맞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뜰의 시대다. 우리나라에서 뜰은 집안에 있는 마당을 가리킨다.
인천애뜰은 그런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시청사가 광장을 품에 안은 듯한 정원의 모양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결합된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바뀐 것이다.
물론 새로운 모습이 정착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인천애뜰이 시민들의 정감어린 힐링 소통공간으로 자리잡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