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재개발 다룬 사진시집
▲ 안미경 지음, 다인아트, 158쪽, 2만원

▲ 쇠밥, 청계천, 2019 (99쪽)

"한 번도 남에게 공돈 받은 적이 없다./ 땀 흘려 일한 만큼 댓가 받는다./ 한 번도 헛돈을 써본 적이 없는 내 손이 일어선다./ 한 번도 슬픔을 느낀 적이 없는 내 몸이 일어선다./ 길 위에서 광장에서 타오른다."('몸의 시간' 68~69쪽)

한 때 '돈만주면 탱크도 만들어 준다'는 속설로 유명한 청계천 공구상가의 사람들을 기록한 안미경 작가의 사진시집 <청계천 탱크>가 나왔다. 30년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금은 인천 미산초등학교 교사인 지은이는 2년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청계천으로 출근하다시피하고 평일에도 방과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청계천 사람들을 만났다. 인물 추상화를 유화로 그린 작품으로 개인전 2차례 가진 화가였지만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사진 기법을 1년동안 공부했다.

청계천은 여러 가게에서 부속품을 모아 어떤 제품도 완성할 수 있는 유기체 같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저렴하게 가능한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근대의 고유한 '철기문명'이 있는 곳이다. 지은이는 '오래 된 청계천, 우리 곁에 있어'주면 '사라진 탱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청계천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이 책에는 청계천 공구상과 골목상권, 재개발을 반대하며 생존권을 요구하는 시위 장면을 통해 '철기문명'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부분 상공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장면, 공구들, 청계천 풍경들을 통해 청계천에는 기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좋아하며 수리하거나 만들어내는 기술자의 모습과 함께 나무와 꽃, 기름때 묻은 채로 돌아다니는 강아지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이를테면 '불꽃밥'에서는 '아침밥은 쇠밥/ 점심밥은 기름밥/ 저녁밥은 불꽃밥'이고, '쇠밥'에서는 '쇠가 타는 냄새와 섞어 먹는 쇳가루 쇠밥/ 마른 쇠밥만 먹었더니 목이 메어 와 알곤/ 가스에 비벼먹었던 기름밥이 꿀맛'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봇대 머슴'에서는 '일손 부족하면 꺽다리 전봇대가 말없는 머슴이다./ 전봇대에 처억하니 구리선을 붙들어 묶는다./ 잡아 줄 사람 없다고 투덜대면 무엇할텐가?'라고 한 뒤 '드릴날 통 철서랍장'으로 '전 주인에게 물려받은 서랍장의 용도는 미제 드릴 날 통이다./ 그때는 국방색이던 서랍장이 금색이 되었다./ 그때는 검었던 공구상의 머리색은 은색'이라며 오랜시간 함께한 서랍장과 주인이 훈장같은 금색과 은색을 나눈다.

결국 '청계천 황금요람'에서는 '동방박사, 황금·유약·몰약, 베들레헴, 마굿간, 황금요람'을 통해 청계천의 역사와 과거는 바로 미래를 낳는 요람,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소중한 '황금요람'이라고 규정한다.
심은록 전시기획 및 미술비평가는 서문에서 "안미경 사진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를 예술적으로 한 겹, 두 겹 승화시켜 기록에서 예술로 나아간다. 작가의 생각을 관람객에게 강요하지 않고, 생각할 여지와 작품 속에 상상 가능한 공간을 제공한다. 작가의 사진은 관람객들에게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에포케(epoche·괄호치기, 판단중지, 유보)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밝혔다.

'종이책 문명'을 상징하는 인쇄공장 밀집지역인 을지로 일대를 다룬 '사진시집' 2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은이는 에필로그 '쇠밥'에서 "자동차가 나타나서 마부가 사라졌고, 인공지능 및 3D프린터가 나타나서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다. 철기문명을 기반으로 한 철기계 절삭가공 방식이 디지털문명을 기반으로 한 3D프린터 기술의 적층가공 방식으로 문명 '대전환'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