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그 날(15일), 그 무렵 송도의 어느 대폿집에 있었다. 남북 간 축구 경기가 막 열릴 때였다. 프로야구 중계를 쳐다보던 일행 하나가 갑자기 "어"하며 TV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아래로 '평양 무관중 경기'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다. 한편으로는 허를 찔린 느낌이 이런 거로구나 싶었다. 옆 테이블에서도 술잔을 놓고 TV 앞으로 다가왔다.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보는구나"라는 탄식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 포털에서 검색어 '무관중'을 넣어봤다. 밤새 각 언론사 편집자들의 고심과 재치가 묻어나는 제목들이 봇물을 이뤘다. '평양 축구는 희한했다.' '해괴한 깜깜이 축구' '희대의 미스터리' '사상 초유' '외신기자들도 황당' '처음 보는 셀프 무관중' '평양-말레이-서울, 봉화 올리듯 릴레이 문자중계' '적막한 경기장엔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와 심판의 호각소리뿐', 영국 BBC는 '희한한 더비'로 보도했다고 한다. 우리말 '희한한'이 영어로는 뭔가했더니 'the strangest'였다. 이런 깜깜이 와중에 분석 기사도 있었다. 혹시 패배를 우려해 무관중을 택했다, 일방적 응원 없는 '공정한 경기'를 과시했다, 남북 교류 같은 것에는 별 흥미가 없다는 의사표시다 등. 장님 코끼리 만지기일 뿐 여전히 수수께끼다. 댓글에도 북한의 입장을 살피는 선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릴레이 문자중계에 대해 '차라리 편지 비둘기나 파발마가 빠르겠다'는 댓글에 추천이 몰려있었다. ▶관중석을 폐쇄하고 경기를 치르는 것이 무관중 경기다. 보통 문제를 일으킨 구단에 가하는 징계의 하나지만 드물게는 국제분쟁 등 안전상의 이유로도 진행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발적인 무관중 경기여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도 2016년 11월부터 1년간 집행유예 성격의 무관중 징계를 받았다. 시즌 최종 경기를 이겨 1부 리그 잔류가 확정되자 흥분한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한 것이다. '철창·감옥 경기' 등 엽기적인 경기 형태가 많은 프로레슬링에도 특정 장소 경기 중 하나로 무관중이라는 경기 방식이 있다. 언젠가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국가대표팀이 "우리는 늘 무관중"이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뒀어도 여전히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번 셀프 무관중으로 북한은 큰 광고 효과를 봤을 수도 있다. 그깟 입장료 수입에 연연해 하지 않는 강성 대국의 면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정상국가가 존재했으면 한다.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로 받아들이고 선의의 교류를 가로막지 않는 그런 나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