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란 캔버스에 꽃으로 그린 화가
▲ 거트루드 지킬 글·그림, 이승민 옮김, 정은문고, 240쪽, 1만3800원

▲ "정원을 향한 사랑은 한 번 뿌리면 결코 죽지 않는 씨앗이다. 죽지 않고 자라고 또 자라서 오래도록 변치 않고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행복의 원천이 된다." 빅토리아풍의 검은 원피스를 입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정원을 돌아보는 노년의 거트루드 지킬.
"아이가 정원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도와주려면 나는 미리 마련된 예쁜 꽃밭을 제 몫으로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식물을 심는 것도 장차 배워야 하겠지만, 그건 조금 나중으로 미루는 편이 더 낫다. 이미 만들어진 꽃밭을 매일 돌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아이의 꽃밭' 중에서 37~38쪽)

정원에 관한 책이라면 꼭 등장하는 여성 정원가가 있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 미국에 400여개의 정원을 만든 거트루드 지킬이다. 화가이면서, 자수 전문가이며 사진가이기도 했던 지킬은 서른 후반부터 고도근시로 시력이 악화되면서 자수와 그림으로 표현했던 그녀의 예술 활동을 정원으로 옮긴다.

특히 영국의 정원은 지킬 등장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에 색깔을 입혀 어떤 꽃을 어떻게 배치해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까를 연구하며 디자인한 최초의 인물이 지킬이기 때문이다. 오렌지, 그레이, 골드, 블루, 그린 다섯 가지 색상을 길게 배치하는 방식의 정원을 처음으로 꾸미며 식물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존 러스킨으로부터 색채를 배우고 윌러엄 모리스를 만나 '아트 앤 크래프트' 정신을 공유한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자신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어린 청년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집과 정원과 풍경의 조화라는 '아트 앤 크래프트' 정신으로 100여개의 가든 디자인 작품을 남긴다. 정원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지킬만의 색채감으로 영국의 정원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원 디자인 역사에 획을 긋는다.

이 책은 씨앗 뿌리는 때, 잡초 뽑는 때, 씨앗 크기에 따라 심는 방법 등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초보 정원사에게도 훌륭한 지침서다. 화가로서의 훈련된 시각과 관찰력으로 식물의 소리, 색깔, 냄새, 질감까지 구별해 들려준다. 화가답게 다양한 씨앗과 뿌리도 그려 넣었다. 식물뿐만 아니라 빵이나 고양이로도 입면도, 단면도, 평면도를 그려가며 친절하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있다.

또 사진가답게 정원에 함께 사는 고슴도치, 거북이, 박쥐, 부엉이 등 직접 찍은 사진도 실었다. 지킬은 "화초와 나무를 그저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가장 가치 있고 가장 훌륭한 쓰임새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지킬의 글은 평생 수확한 씨앗을 모아둔 봉투같아서 정원사가 아니어도 집에 마당이 없어도 창가에 화분 하나 기르는 사람에게 지킬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글, 초록한 것을 기르는 사람의 태도를 가르쳐주는 글은 누구라도 쉽게 읽힌다. 거트루트 지킬은 색채의 미학과 사진을 공부한 화가이고, 금속세공, 목공예, 자수에 능한 공예가이며, 30종 이상 품종개량에 성공한 원예가이자, 400곳이 넘는 정원을 설계한 정원 디자이너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