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칭우 경제부장

일본 아베 정부의 7월 초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시작된 국내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 품목,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며 지속되고 있다. 초기에는 일본 브랜드 점포 앞에서 벌이는 릴레이 시위 등이 많았다면 시간이 갈수록 안사고, 안가고, 대체하겠다는 개념행동이 대세가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노년층은 물론 초·중·고교 학생들까지 나서 이번 일을 극일의 계기로 삼자며 불매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고,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일본 잔재 청산 운동도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 전국민적 자발적 움직임이 수치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사기. 8월 일본맥주 수입 금액이 전년 동월 대비 97% 감소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 434만달러보다 95% 감소한 22만달러에 그쳤다. 10여년간 맥주 수입액 부동의 1위였던 일본맥주는 이제 13위다. 8월 일본 수입차 등록은 1398대로 집계돼 작년과 비교해 56.9% 추락했다. 이미 6월과 비교해 32%나 실적이 줄어든 7월(2674대)보다도 47.7%나 폭락한 것. 58대 판매에 그친 닛산은 한국 철수설까지 나오고 있다. 유니클로는 벌써 여러 매장 문을 닫았다. 신용카드사가 집계한 유니클로 매출은 6월 59억4000만원에서 7월 17억8000만원으로 급감했다. 매출단가가 높아지는 가을·겨울시즌까지 불매운동이 지속된다면?

안가기. 일본 여행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지난 8월 한일 양국을 오간 항공여객 수가 전년보다 20% 이상 감소했다. 국적 항공사들은 일본 노선 공급을 축소한 가운데 일본 항공사도 한국 노선 운항을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8월 국내 항공사들의 일본 노선 여객수는 132만954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8% 감소했다. 27개의 일본행 노선이 운영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일본 노선 여객 수 88만3787명으로 20.6% 줄었고 김포공항도 21.8% 감소했다. 삿포로(-39.7%), 오키나와(-32.4%), 간사이(-30.9%), 후쿠오카(-29%) 등 지방도시 감소폭이 훨씬 컸다. 일본여행 자제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 건 주요 종합여행사의 패키지 판매 실적이다.
지난 7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에서 일본여행 실적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6.2%와 38.3% 감소했고, 8월 실적은 각각 76.9%와 83.3%나 급감했다. 상징적인 것, 6~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57개국 420여개 업체가 참여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2019 모두투어 여행박람회에 일본관이 아예 개설되지 않았다. 8월까지 위약금이 남아 있다고 보면 패키지를 중심으로 한 여행 안가기는 추석연휴에 정점을 찍고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산화 혹은 대체하기. 일본 무역보복의 핵심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소재 국산화와 다변화가 예상을 뛰어 넘는 속도로 진행 중이다. 일본 의존형 기형적 산업구조가 세계 공급시장을 교란하는 일본을 배제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으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이 일본산 불화수소를 쓰던 일부 공정에 국산 불화수소를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SK하이닉스 또한 국산 불화수소 테스트 진행이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수입 다변화와 국산화 진행으로 안정적인 제품 개발과 공급에 주력하고, 정부에서도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대한 6조원의 정책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기해왜란으로까지 불렸던 올해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7~8월이 지나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쏠렸던 비이성적인 관심도, 강풍을 동반한 태풍도 지나갔다. 서서히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NO JAPAN, NO ABE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냄비근성' 들이대며 금방 식을 거라 생각했던 일부 국민들과 일본 위정자들이 있었겠지만 우리가 냄비를 사용한 건 불과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을 터. 가마솥에서 팔팔 끓인 것을 뚝배기에 담아 온기를 보존해온 국민 아닌가. 조선산업이나 반도체산업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에 비해 뒤처졌던 품목에서 서서히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한·이스라엘, 한·영국 자유무역협정 체결 소식이 들려왔고 대표적인 친일지역이었던 동남아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방문 계기로 한류를 넘어 산업적으로 무역적으로 한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방성을 높이기 위한 무비자 확대 정책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