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학문, 발표용 논문이 아닌 '사무' 다뤄야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지구전요>에 실린 지구도(위가 지구전도, 아래가 지구후도)

선생은 일통학문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삼대운화론'을 펼친다. '천인운화(天人運化, 그 근원을 말한다면 학문의 근본 바탕, 그 끝을 말한다면 학문의 표준)', '활동운화(活動運化, 기학의 근본), '통민운화(通民運化, 기학의 중심 축)'가 그것이다. 천인운화와 활동운화는 개인의 인식에 대한 깨달음이다.

특히 천인운화란 하늘과 사람이 일치되는 삶이다. 천인(天人)은 천도(天道,천지자연의 도리)와 인도(人道,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삶과 관련된 일체의 사무)를 합한 말이다. 통민운화는 이 깨달음을 정치와 교육에 의해서 인류사회에 확산시켜서 인류 공동체가 도달하게 되는 세계이다.

이 통민운화를 선생은 다시 사등운화(四等運化)로 설명한다. 수신(修身)의 요체로서 깨달음으로 얻은 천인운화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 '일신(一身)운화', 제가(齊家)의 요체로서 천인운화를 가족에게 적용하는 '교접(交接)운화', 다음이 치국의 요체로서 천인운화를 국가에 적용하는 '통민(統民)운화', 마지막으로 평천하(平天下)의 요체로서 천인운화를 천하에 적용하는 가장 큰 '대기(大氣)운화'다. 이른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관용어를 이렇게 요령 있게 기학에 적용시켰다.

선생은 대기운화에서 일신운화까지 '일통(一統)운화'를 이루면 사해가 동포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거대담론 중, 거대담론이다. 19세기 중엽, 조선의 한곳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인이 있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이웃 나라를 꽤나 괴롭히는 일본(아베) 행태가 그야말로 소인배짓거리로 가소로울 뿐이다.

이제 '사회의 정치적 질서도 인간에 근본하는 것'이라 외치는 <인정(人政)>을 보자. 선생 철학의 근본 입장과 사회사상을 밝혀주는 저술이 바로 이 <인정>이다. <인정>은 25권으로 4문 1436조로 구성되어있다. 선생의 저술 중 가장 방대하다. 36세 때 지은 <감평>을 그 속에 포함하여 58세 때 완성한 것으로서 사상적 원숙기에 이룬 저술이다. 선생은 <인정>에서 '사회의 정치적 질서도 인간에 근본하는 것이요, 자연과 인간의 조화도 인간을 통하여 추구될 수 있다'는 인도(人道) 철학을 사회적으로 해명하였다.

<인정>의 체계는 크게 측인문(測人門), 교인문(敎人門), 선인문(選人門), 용인문(用人門)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측인'은 사람을 헤아려 인성과 적성을 탐색해 보는 일이요, '교인'은 인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일이며, '선인'은 인재를 선발하는 일이며, '용인'은 심사숙고해서 뽑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일을 의미한다.

지면 관계로 <인정> 제11권-교인문 4 '사무진학문(事務眞學問)'만 보겠다.
"무릇 온갖 사무가 모두 참되고 절실한 학문이다. 온갖 사무를 버리고 학문을 구하는 것은 허공에서 학문을 구하는 격이다. … 만약에 상투적인 고담준론만 익혀 문자로 사업을 삼고 같은 출신들로 전수 받은 자들에게 일을 맡긴다면 안온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남을 가르치게 해 보아도 조리를 밝혀 열어주지 못 한다. 이름은 비록 학문한다고 하나 실제 사무를 다루고 계획함에 몽매하니 실제로 남에게 도움과 이익을 주는 일도 적다."

우리 학문은 공허함이 병폐이다. 지금도 책과 삶이 어우러지는 '실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생은 '사무가 참된 학문(事務眞學問)'이라고 단언한다. 저 시절 선생 말이 이 시절에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의 헛된 교수행태를 지적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사(士)·농(農)공(工)·상(商)과 장병(將兵) 부류'를 학문의 실제 자취(皆是學問之實跡)'라 하였다.

현재 우리 국문학계만 보아도 그렇다. 국문학과가 점점 개점폐업 상태가 되는 까닭은 실학이 안 되기 때문이다. 거개 학자들의 논문은 그저 학회 발표용이니 교수자리 보신책일 뿐이다. 심지어 대중들의 문학인 고소설조차 그렇다. 연구라는 게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 등 정전(正典)이 아닌, 정전(停典)이 되어버린 몇 작품에 한정되고 그나마 작품 연구자체만 순수학문연구라고 자위(自爲)한다. 내 일신의 안녕과 영화만을 생각하니 국문학 전체가 보일 리 없다. 나 자신도 내가 우리나라 국문학 발전을 저해함을 통렬히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다음 회부터 고산자 김정호 편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