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부터 구령대까지 … 교정에 남아있는 '日 흔적'
▲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학교현장에는 습관적으로 사용중인 일제잔재가 여전해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오전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일제잔재 중 하나인 구령대 위에서 놀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수학여행·수련회·소풍'은 일본에 조선인 학생들을 보내 일본문화를 익혀 민족정신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1907년부터 행해진 활동이었다. 문서상으로 '문화탐방'이나 '문화체험활동' 등 여러 대체용어로 바꿨지만, 교사나 학생들의 구어상 용어로 남아있다.
 교육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학교생활 속 언어·문화·구조 등의 일제잔재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현장에는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일제잔재가 여전하다.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
 18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반장·부반장', '파이팅' '~계(屆)', '초등 교과서 속 일제 잔재 놀이', '구령대·조회대', '가이즈카 향나무 교목' 등 바꿔야 할 일제잔재가 수두룩했다.
 '반장, 부반장'은 일제시대 급장(級長) 또는 반장(班長)에서 유래했다. 당시 이들은 학급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주로 담임교사에 의해 지명돼 담임교사의 대리자로 활동했다. 학교현장에서는 회장, 부회장 등으로 대부분 교체됐지만 습관적인 일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응원할 때 많이 쓰는 '파이팅'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대 군인 출진 구호로 부른데서 유래했다.
 휴학계나 결석계로 자주 쓰이는 '~계(屆)'는 일본에서 공문서를 지칭하는 '~とどけ(토도케·屆)'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학사운영에 자주 사용하는 일본식 한자표현이다.
 현행 교과서에 실린 일제잔재 놀이도 많다. 대표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 속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 동원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놀이였다. '꼬리 따기', '대문놀이', '비석치기' 등도 일제 잔재 놀이다.
 '구령대·조회대'의 학교구조도 높은 구령대에서 교장이 말하고 학생들이 아래에 줄서서 듣는 모습으로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다. 학교 내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가이즈카 향나무 교목'도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로 소나무 등 다른 나무로 교목을 교체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에 '훈화'는 상사가 부하에게 '훈시'한다는 일제강점기 군대 용어로 감시와 통제를 위해 사용했다.
 '동서남북' 등 방위를 일컫는 용어나 순서표시가 들어간 학교 이름도 일제가 식민통치에 유리하도록 개편한 것이다.
 '간담회'는 일본식 (懇談會 콘단카이:こんだんかい)를 한글로 표기한 낱말이다. '사정회·사정안'도 일본어식조어표현으로 생겨난 용어다.
 '교실 정면 태극기'도 일장기를 액자에 넣어 게양하고 일제에 충성심을 강요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학교구성원,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여
 도내 초·중·고등학교 교원과 학생들 중 81%는 이러한 일제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청산찬성의 이유로는 '민족 자주성을 훼손하고 민족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담긴 아픈 역사로 청산이 절실하다(47%)'가 가장 많았다.
 '일제식 언어표현 등 일제잔재인 줄 모르고 썼던 익숙함을 청산하자'(27%), '통제와 감시가 주 목적인 일제식 학교문화는 학생의 민주적 자율성을 통제하고 민주적 학교문화 발전을 침해하기 때문에 청산해야 한다'(25%)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청산을 반대하는 의견(19%)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해 익숙하기 때문에 변경하면 오히려 불편하고 일제잔재도 우리 문화의 일부라는 이유가 68%였다.
 학교구성원들은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서는 각 학교현장에서 대토론회를 하는 등 교사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일제잔재 인식 개선을 위해 학생(학생자치회) 중심으로 ▲언어순화 프로그램 ▲일본잔재 용어와 그 대체용어 홍보 ▲일본말의 순 우리말 대체캠페인과 퀴즈대회 ▲일제잔재 알리미 모집 등 다양한 활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의견이 나왔다.
 교육활동과 연계한 청산 방법도 제시했다. ▲'올바른 역사알기' 교실수업 ▲바른 역사관에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역사수업 ▲학교로 찾아가는 역사수업 등을 통해 청산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도교육청은 분석한 조사결과를 학교현장에 알리고 공유할 방침이다.
 이정현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관은 "학교구성원들이 이번 조사를 토대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청산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권장하겠다"며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도희 기자 kd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