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한국의 인구는 5000만을 넘었다. 규모로 한다면 중국과 일본을 감당해내기 쉽지 않은 수이다. 5000만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지만 분열하여 힘을 결집해내지 못한다면 경쟁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의 정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판이다. 국민도 편을 갈라 지지하는 정치집단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되어 서로 상대의 공격수를 자처한다. 언론의 자유가 상대의 의견을 매도하는데 발휘되어 양보 없는 대립으로 표출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폭풍전야의 대립상태이다. 같은 국민이면서 아군 아니면 타도해야할 적군인양 하고 있다.

금번 한일문제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쪽은 애국자이고 다른 한쪽은 친일파, 매국노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집권을 위해 해왔던 빨갱이 프레임이 약자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진보주의자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해놓고 일부는 함께하고 일부는 몰아내자는 정치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로는 국내에서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지언정, 타국과의 싸움에는 아군이어야 할 국민들의 저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주변의 절대강국과 싸워내야 하는 국가의 처지가 가련하다.

국가 위기에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 일치단결하여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국민이 하나가 될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여당이 평소 지지하지 않는 세력에 대해 타도해야할 적쯤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위기라며 협력을 말해본들 쉽게 먹힐 리 없다.

반대세력을 선의의 경쟁상대가 아닌 청산대상이라 규정하고 나와 다른 말, 다른 행동을 한다 하여 이를 적으로 간주한다면 국민은 분열되고 결국 서로가 적대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적으로 낙인찍히는데 외부의 적이 나타난들 목숨 걸고 싸움에 나설 리 없다.

한국의 정치는 권력 쟁취만이 지상과제로 상대에 대한 공격은 늘 도를 넘어, 도발한 외부의 적보다 서로가 더 방어해내야 할 적처럼 되어 있다. 정치에 유리하면 적의 도발마저 마다하지 않을 태세이니, 국가 위기라 한들 정쟁의 도구로 작용할 뿐이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일제에 당한 설움만큼이나 크다.

늘 말하는 국민통합이지만 단 한 번도 이뤄졌다는 평가가 없다. 정부·여당과 그 지지자들만이 만족하면 되는 정치에서 국가 위기에 전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참은 하지만 정부·여당의 처사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가 못 챙기는 국가를 위해 정부에 분노하면서 국민이 나서는 것뿐이다. 하지만 온 국민이 집밖에 나와 밤잠 안자고 응원한다하여 운동경기를 이기게 하지는 못한다. 힘찬 응원에도 허무하게 패해 분루를 삼키며 훗날을 기약하지만, 나름의 피나는 노력에도 승리의 여신은 잘 찾아주지 않는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국가 위기에 모두 이순신처럼 되자고 외치지만, 당시 이순신을 대신할 장수는 이순신밖에 없었다. 많은 이가 이순신처럼 나섰지만 결국 이순신이 되지 못하고 패했을 뿐이다. 기적을 일궈낸 이순신을 모두 마음만 먹으면 실현해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모한 선동이 될 수 있다.

이순신이 나서야할 전시상황을 초래했다면 당시와 같은 무능한 정부가 되었다는 반증으로, 싸워낼 준비도 못해 놓고 기적만 바라는 모습이라 하겠다. 또다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대한 능력자에 국운을 맡겨야 할 위기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삼권분립이라지만 공천권에 행정부, 사법부의 주요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부·여당 독점의 정치체제로 협치 및 상생의 정치를 가로막으며 늘 국가를 정쟁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권력의 독점을 막을 의원내각제를 고려해보고, 권력욕에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국회의원 당선횟수도 지자체의 장처럼 3선까지로 제한하여 고이면 썩는 물을 순환하는 체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