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박물관장

 

▲ 인천 동구 만석동 아카사키촌 골목에 위치한 우리박물관.


2003년 처음으로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자마자 찾아간 곳이 만석동 '아카사키촌'이었다. 골목은 딱 어른 어깨너비였고 주민들은 여전히 '공동변소'를 사용할 만큼 거주 환경이 열악했다.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는 골목 풍경은 정지화면과 같았다. 움직여봐야 슬로우모션이었다.

1937년 설립한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를 빼놓고는 만석동을 얘기할 순 없다. 조선기계제작소는 태평양전쟁을 수행할 잠수정을 건조하기 위해 도크를 신축하고 1300여 명의 노동자를 위한 숙사(宿舍) 112동을 새로 건축한다. 이때 세워진 집들이 '아카사키촌'의 근간이 된다. '아카사키'는 일본 곳곳에서 흔하게 불리던 지명으로 일제가 박아놓은 또 하나의 쇠말뚝이었다.

이 골목 안에 2015년 개관한 우리미술관이 있다. 동구청으로부터 빈집을 제공받은 인천문화재단이 작은 미술관을 마련했다. 큰맘 먹고 시간 내서 들러야 하는 미술관 대신 오가며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마을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작지만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지난주 조세민 작가의 <미미(微美)팩토리> 전시오프닝에 초대받았다. 동구의 산업화를 주제로 기획된 것으로 만석동의 공장들과 노동자의 생활문화 등 사라져가는 것들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자칫 칙칙하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소재를 팝아트 기법으로 재기발랄하게 재해석했다.

'고양이 노동무(勞動舞)' '공장공장공장장' 등 괭이부리마을 지명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가져와 친근하고 재밌는 오브제로 삼았다. 전시 작품을 둘러보며 이제 '아카사키'라는 일제의 쇠말뚝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 완전히 뽑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시오프닝 인사말로 자리를 함께한 미술가들에게 "만석동 고양이를 부탁해(요)"라고 전했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