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지난해 봄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전주의 한 시내버스 기사가 그날 그날 기록한 '운전석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 얼마나 맛깔나게 썼던지, 이메일 투고 반나절만에 알아주는 출판사 15곳에서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는 책이다. 버스기사들이 왜 그렇게 다들 화난 사람처럼 운전대를 잡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는 책이다. 저자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버스 세 탕 뛰면 저절로 욕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버스기사는 만인에게 을이고 승객은 갑의 눈으로만 쳐다보니 버스기사가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버스기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데도 이유가 있었다. 선글라스는 진상승객들의 갑질에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서고, 마스크는 욕 나오려 할 때 차단기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는 결손 가정'이라는 표현도 눈길을 끈다. 노인과 학생 등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더 많이 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혼잣말, 하품, 헛기침, 한숨 등이 마치 구조요청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BMW족은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걷는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 어디에도 한국 버스만한 데가 없다고 한다. 요금은 싸지만 여름에 써늘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ICT 기술로 무장해 예측가능하기까지 하다. 원하는 버스가 몇 분 몇 초 후에 도착할 지를 알 수 있다. 몇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스마트폰에 출발·도착지만 눌러주면 된다. 준공영제 버스기사는 이제 준공무원이다. 그래선지 최근에는 기사·승객 간에 "어서 오세요" "수고하세요" 등의 인사도 주고 받게 됐다. 최근 경기도의회가 희한한 조례를 꺼냈다가 거두었다. 버스가 완전 정차하기 전 이동하는 승객에게 3만원의 과태료를 매기는 내용이다. 법률·조례 만능의 구태가 안쓰럽다. ▶지난달 수원에서 '경기도 버스 승무사원 채용 박람회'가 열렸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맞춰 추가로 필요한 버스기사 500여 명을 채용하기 위한 행사이다. 행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보도다. 한 번 상담하려 30분을 기다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연봉도 괜찮고 근무조건도 좋아진다고 해서 왔다"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주52시간제와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위력이 느껴진다. 주52시간제를 맞추려면 300인 이상 사업장만 쳐도 전국에서 1만6000여명의 버스기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속은 일자리 쪼개기지만 어쨌든 양질의 일자리다. 문제는 세금으로 지탱되는 버스 준공영제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것이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