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멀쩡한 사람도 여의도에만 입성했다 하면 생판 딴 사람이 돼버리기 쉽다고 한다.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은 소주 '참이슬', '처음처럼'을 작명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그러나 금배지를 단 이후에는 '방향 잃은 싸움닭'쯤으로 비쳐지곤 한다. 지난 주 검찰이 손 의원의 '목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미리 입수한 개발 정보를 이용해 토지 26필지, 건물 21채를 사게 하거나 차명거래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의 이상 현상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우선 자고나면 잔뜩 날을 세운 온갖 '말 말 말'들이 쏟아졌다. 처음 손 의원은 "내 인생과 전 재산, 의원직을 걸겠다. 목숨도 내놓겠다"고 했다. 비판 언론을 향해서는 "너희는 무엇을 걸겠느냐"고 되물었다.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의원은 "창성장(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된 목포의 건물)은 누구 겁니까"라고 했다가 혼이 났다. 손 의원이 "다음 선거 때 박지원을 물리치는 후보의 유세차를 함께 타겠다"고 해서다. 검찰 발표 이후에도 "검찰이 말한 보안자료를 읽지도 않았다" "검찰이 크게 실수했다" 등으로 이어졌다. ▶심층취재에 나선 언론들을 공영방송이 공격하고 나선 것도 볼만했다. 목포 사건은 지난 1월 SBS의 보도로 시작됐다. 의혹이 불거지자 KBS는 바로 '9시 뉴스' 스튜디오에 손 의원을 출연시켰다. 정확히 10분 7초 동안 손 의원은 전 국민을 향해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되풀이 쏟아냈다. KBS 앵커가 오히려 당황해 보였다. KBS는 다른 토크쇼 프로를 통해서도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SBS 보도에 다른 내막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보냈다. 힘들게 의혹을 파헤치는 다른 언론들에 대해서는 '취재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등으로 훈계까지 서슴지 않았다. '권력 비판'이라는 소금기를 잃은 언론이 어디로 향하는 지를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친일 잔재', '토착 왜구' 논란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심어진 향나무조차 베어내는 시대다. 친일 행적 음악인의 교가도, 일본인 교장 사진도 지워야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살다 버리고 간 적산가옥에는 수천억대 세금을 들여 깔끔하게 가꾸려다 이번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검찰 수사 얘기다. 애써 수사해 놓고도 '줄타기 수사', '늑장·눈치보기 수사' 등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손 의원은 우리 국민 다들 눈치챘듯이 살아 있는 권력이다. 청와대에도 지인이 있고 탈당 기자회견에는 여당 고위간부까지 배석했다. 그런 권력에 부패방지법까지 걸었다. 그 꼿꼿하다는 도쿄지검 특수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비난만 할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