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경기본사 사회부장

우리는 한때 그들을 '외화벌이 일꾼'이라고 치켜세웠고, 또 한편으로는 '양공주'라며 멸시했다.
정전협정 이후 1954년 미군기지 주변에는 본격적으로 기지촌이 생겨났다. 기지촌에는 극한 가난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또는 인신매매 등으로 유입된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양공주', '양색시'라 불리며 비난받았다. 문제는 이들이 미군을 상대로 한 외화(달러)벌이가 만만치 않자 정부에서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64년 당시 한국의 외화 수입이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미군 전용 성매매 홀에서 벌어들인 돈은 970만달러에 달했다. 성매매 행위가 불법이었음에도 단속은 커녕 미군들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지촌 정화사업'까지 벌였다. 미군을 상대로 한 술집에 면세 혜택을 줬으며, 관광산업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에게 간단한 영어회화 교육까지 제공했다.

또 미군의 성병 예방을 위해 행정력까지 동원했다. 특히 성병을 겪거나 의심되는 여성들은 수용소로 강제 격리시켰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에 의한 살인, 폭행, 갈취, 감금 등의 범죄와 성매매 알선업자(포주)에 의한 강간, 구타, 약물 투여 등 범죄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었다는 점이다. 기지촌 인근 파출소나 시, 군 공무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당시 기지촌에서 일했던 할머니들의 증언록과 국가기록원 자료 등에 모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지자체의 공식 지원이 이뤄진 적은 한 차례도 없다. 피해와 지원 근거 등을 명시한 관련법이나 조례가 없어서다. 그동안 경기도에서 이들을 위한 조례가 무려 5차례나 추진됐다가 무산됐다.
지난 2014년 고인정 전 의원, 정대운 의원의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 2건은 모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자동 폐기됐다.

무산됐던 조례는 지난해 3월 박옥분 의원이 입법예고를 하면서 다시 불씨가 당겨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임위에 상정되지 못했고, 9대 도의원 임기가 끝나면서 또다시 폐기됐다. 그해 6월 평택에서 ㈔평택시민재단 등 관련 단체가 시민 차원에서 추진한 조례안은 입법절차를 밟지 못하고 중단됐다.
정치권과 시민의 노력에도 조례가 제정되지 못한 원인은 정부 차원에서 사안을 정리하지 않은 상황 탓이 크다. 집행부인 도는 그간 상당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상위법이 없어 지원 대상을 어느 범위까지 봐야 하는지의 기준 등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게다가 유승희 의원이 낸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하지만 경기도 내 시민단체들은 올해의 경우 각계각층 인사들의 큰 관심으로 밝은 전망을 기대하고 있다.

이재명 도지사도 집행부에 지원 관련 노력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해 서울고법이 여성 11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의 책임을 물으며 배상금 지급을 판결했다는 것이다. 소송을 위한 시민단체 조사에서 원고를 비롯한 200여명 여성 중 50% 이상이 평택, 의정부, 동두천 등 경기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를 넘긴지 오래다. 특히 정신·신체 피해에 대부분 도움 없이 당장 연명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또 평택 시민단체 ㈔햇살사회복지회 소속 여성 중 80% 이상은 기초생활수급자다. 얼마전 한 위안부 할머니가 제대로 사과도 못 받고 돌아가셨다.
이제라도 우리가 잘못했던 행위를 바로잡고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기지촌 성매매는 공론화되기 어려운 주제였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증언하기도 어려운 주제이다 보니 상당히 늦어졌다.
한때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을 통해서 반성할 게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이들은 부끄러운 치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