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노르망디 지방의 서해안 끝자락에 있는 셰르부르 항구를 처음 찾았던 것은 70년대 초였다. 나이든 영화 팬이라면 기억할 명화 <셰르부르의 우산>의 무대였고 명작 <만종(晩鍾)>으로 유명한 장 프랑스와 밀레의 작품들이 많이 소장된 토마 앙리 미술관이 있는 항구도시에서 가게마다 기념품으로 우산을 팔고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한국 전시를 위한 밀레의 작품 대여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관장의 대답을 듣고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셰르부르를 무대로 젊은 남녀들의 애정과 운명을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 <씨네오페라>라는 별칭을 얻고 1964년 칸느 영화제 대상을 받은 <셰르부르의 우산>의 여주인공을 맡은 카트린 드너브는 그 후 파리에서 알게 되었지만 당시 20대 초의 청순한 인상과 차분한 연기는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필자와는 또 다른 인연이 있었던 여배우 다니 로방과 함께 카트린 드너브는 프랑스의 유명인사로 오랫동안 각인되고 있다. ▶2차 대전을 종결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격전지는 셰르부르였다. 1944년 6월6일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연합군을 상대로 독일의 롬멜 원수는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셰르부르 전투에서 8500명의 미군이 전사했고 독일군도 4만여명의 수비군 중 8000명이 전사하고 3만명이 포로가 되면서 24일 만에 전투가 끝났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규모 공방전이었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을 때 겨울철의 셰르부르 항구와 영화 <셰르부르의 우산>, 그리고 카트린 드너브와 화가 밀레가 복합적으로 연상되어 쌩 라자르 역에서 떠나는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노르망디 평원에는 흰 눈이 덮여 있었고 껑(Caen)과 바이유(Bayeux)를 지나면서는 겨울철 초록 들판이 펼쳐졌다. 내항에는 크고 작은 어선과 요트들이 가득했고 전쟁의 피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념품 상점마다 팔고 있던 값싼 우산 모형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항구 앞 큰길에 자리 잡은 셰르부르 우산 회사의 매장에는 각가지 색채의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값비싼 수제 우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1986년 장 피에르 이봉씨가 영화에 나오는 진품우산을 만드는 회사와 우산박물관까지 만들어 또다른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2차 대전의 격전이 있은지 74년, 그리고 영화가 개봉된지 54년이 된 셰르부르는 평화롭고 풍요한 항구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