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사할린 사코르사코프 항구에 있는 망향의 탑을 찾았을 때였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 현 국무위원장이 대를 있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던 시점이어서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사할린 한국어 방송국에서 일하는 여성분에게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 3대째 정권을 승계하는 북한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정권을 대물림하는 북한도 문제이지만 대통령이 물러나면 조사하고 구속하는 남한이 더 부끄럽게 느껴집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존해 있는 2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있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야권과 보수쪽의 정면대결적 양상이 점차 격화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문제점과 이로 인해 198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임기 후의 시련은 현대 한국정치사의 치부이기도 하다.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실종되고 극한대결 상황이 일상화된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후 운명은 사할린 동포가 말하듯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대결했던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46세의 젊은 클린턴 후보는 68세의 현직 대통령을 향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공격적인 대선 슬로건으로 승리했다. 청중을 열광시키는 연설능력에 정력적이며 미남형 아칸소 주지사의 쇼맨쉽에 이미지 정치와 거리가 멀고 대중적 인기도 없었던 부시는 만신창이로 패배했다.

▶선거에 패배한 부시에게는 품위와 애국심이 있었다. 백악관을 떠나면서 부시는 손수 펜을 들고 신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대통령 집무실 책상위에 놓았다. 『친애하는 빌,… 당신이 이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부당한 비판 등으로 매우 힘든 날도 겪게 될 것입니다. 나는 훌륭한 조언자는 못 되지만 그런 비판 때문에 용기를 잃거나 정도를 벗어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가족들도 이곳에서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성공이 이 나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굳건히 지지하겠습니다. 조지.』

▶취임식 후 백악관에 들어와 전직 대통령이 써놓고 간 편지를 받아든 신임 대통령 클린턴은 감동의 전율에 싸였다. 그 후 부시와 클린턴은 이념과 정당 그리고 세대차를 극복하고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누고 협력했다. 지난 주 세상을 떠난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전임 대통령을 예우하며 업적을 부각시키는 전통이 부럽게 느껴졌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