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경기본사 사회2부장


1971년 12월25일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있는 한 호텔에서 화재가 났다. 발화 원인은 1층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 있는 프로판 가스통이 폭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곧바로 호텔 전체로 삽시간에 확산됐다.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서울지역 모든 소방차는 물론, 주한미군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까지 투입됐다. 하지만 옥상에는 헬리포트가 없어 헬기 구조는 힘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어 많은 투숙객이 희생당했다. 여기에 고가 사다리차는 8층 높이가 한계라 그 이상 고층 투숙객들을 구조할 방법이 없었다. 특히 당시 이 화재로 수많은 고층 투숙객이 유독가스와 열기를 이기지 못해 창밖으로 뛰어내리는장면이 TV로 생중계돼 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충격적인 사고가 바로 대연각호텔 화재사고다. 사망자만 160여명에 달했고, 다친 사람도 6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서울 인구가 500만을 넘어서면서 고층필딩은 90여개에 이를정도로 팽창중이었다.
문제는 대연각 같은 고층빌딩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고 있는 반면 이에 맞는 화재대책은 전무했다는 점이다. 대연각호텔 화재는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사고중 하나라는 불명예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2017년 12월 충북제천 스포츠센터 대형화재 사고. 국내에서 발생한 12월 화재사고 중 세번째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제천지역에서는 역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됐다.
앞서 발생한 2015년 의정부아파트 화재에서도 백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두화재의 인명피해가 이처럼 컸던 이유는 드라이비트 공법이였다

드라이비트는 외단열시스템의 최종 마감재로 미국 회사 '드라이비트'에서 따왔다고 한다. 드라이비트가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마감재(드라이비트)안에 단열재로 사용한 스티로폼이 불에 쉽게 타고 유독가스를 다량 발생시킨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6층 이상 건축물의 외단열시스템에 사용하는 마감재에 준 불연재 이상을 사용하도록 건축법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시행령의 이전에 건축된 건물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거론하겠다. 그리고 가장 최근 발생한 서울 종로구에서 발생한 고시원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
비상벨과 비상탈출구, 탈출용 완강기는 설치됐지만 무용지물 이었다.고시원은 일반적으로 약 5㎡(1.5평)의 규모의 방을 다닥다닥 붙게 만들어진 데다 복도도 좁아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화재경보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2월과 6월에 발생한 파주 고시원, 용산 고시원 화재는 10여분에 만에 진화돼 사상자가 없었다. 스프링클러가 즉시 작동됐기 때문이다. 10월 달에 발생한 부산과 고양 고시원에서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인명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종로구 고시원은 스프링클러가 없어 참사를 불러왔다. 소방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17년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는 3000여건. 그 중 8.3%인 252건이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화재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임대수익을 늘리기 위해 방을 여러 개로 쪼개 화재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적발된 원룸·고시원 불법 방 쪼개기는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1900여건에 달한다.

이때문에 고시원 등 다중 생활시설에 대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서 선행돼야할 문제가 있다. 바로 소급적용부분이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규제도 강화됐지만 기존 건축물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이 문제가 논란이 됐고, 종로구에서 발생한 고시원 화재에서도 화재안전 관련법 소급적용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재전문가와 정부에서도 소급적용부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 실마치구(失馬治廐), 실우치구(失牛治廐),만시지탄(晩時之歎) 글자는 다르지만 이 사자성어가 주는 교훈은 하나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아무리 너덜너덜 해진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않으면 소를 계속 잃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해답을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