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부장(청와대·국회 총괄)


높은 실업률, 소득 양극화 심화, 낮은 경제 성장률, 헛발질만 하는 부동산 대책, 정부 옥죄기에 주눅들어 눈치만 보고 있는 기업….
지금 우리 경제의 모습을 표현한 문구다. 정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경제보다는 '적폐청산'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먼저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부패 없는 사회를 위한 개혁 추진을 국정의 기본 틀로 하던 14년 전 노무현 정부와 비슷하다. 반시장·반기업 정서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궤도 수정 없이 잘될 것이라는 신념 하나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국정 운영 방식도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대표로 이해찬 의원이 선출됐다. 이 대표는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책임 국무총리를 지낸 대표적 친노계 인사다. 이 대표는 지난 주 취임 후 첫 국회 대표연설에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이전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지역 균형발전정책이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로 있으면서 추진하다 완결짓지 못한 정책을 14년이 지나 당 대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이 대표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인 122곳에 대해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옮겨 가도록 당정간 협의를 벌이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지방으로 이전을 하겠다는 수도권의 공공기관은 인천 3곳, 경기 20곳, 서울 99곳 등이다. 여기에 근무하는 인원은 6만명에 가깝다. 인천에 있는 한국환경공단과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을 비롯한 11개 기관은 한 곳의 근무인원이 1000명을 넘는다. 이들 공공기관을 모두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한다.

공공기관 이전은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가 2004년 국가균형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게 취지다. 지방에 좋은 기업을 유치하고 좋은 교육 및 생활 여건을 만들어 돈과 인재가 몰리게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관련 법 제정 후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2007년부터 이전 작업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까지 수도권 소재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연금공단 등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도 나타났다. 공공기관이 떠난 지역에는 인구가 줄면서 지역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 공공기관의 경우 우수한 연구 인력이 자녀 교육 등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들어 지방 삶을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면서 우수인력 이탈 현상까지 빚어졌다. 또 지방자치단체 간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갈등도 생겨났다.

한국행정학회는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발생한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이 3조~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를 감안하면 공공기관 이전으로 얻는 비효율적 사회적 비용도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고려해 공공기관의 이전 속도를 늦췄다.
이 대표가 당을 맡자마자 공공기관 이전 재추진을 들고 나온 데 대해 그동안 드러난 지역 간 갈등과 비효율성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낳는. 지금까지 성과를 보면 공공기관이 이전한다고 그 지역이 모두 발전해 당초 목적대로 국토의 균형적 발전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2020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지역 표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회복에 집중해도 모자란 상황에, 각종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공공기관 이전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을 마뜩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경제 악화 등으로 안 좋아진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는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