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림자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테러를 당한 미국이 `정의의 칼""을 높이 뽑은 것이다. 마치 아메리카가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험악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모든 나라는 미국에게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앞을 다투어 백악관에 줄을 서고 있다. 그 동안 `양키""들에게 용감하게 맞섰던 나라들조차 소나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세계의 논리는 사라지고 오직 미국의 논리가 유일한 도덕률이 된 세상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느 누구도 테러가 발생한 이유를 말하거나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인을 파헤치다가는 악마의 저주라도 받을 것처럼 침묵하고 있다. 세계의 언론들은 전쟁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미국의 `오만""을 확대재생산하기에 급급하다. 뉴욕의 테러는 왜 터졌을까? 언제나 인권을 말하고 평화를 외치는 아메리카는 왜 표적이 되었을까? 미국은 스스로 복수의 전쟁을 선언하기 전에 먼저 테러의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또 다른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테러의 메시지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는 폭력으로부터 정의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선택했다. 거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하는 미국대통령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원수는 사랑이 아니라 복수의 대상이라는 것을 설교하면서 말이다. 황량한 산악에서 모진 목숨을 그냥 이어가고 있을 뿐인 아프카니스탄이 시험에 걸려들었다. 정의의 탈을 쓴 야만의 세계화는 역사의 진보를 의심나게 한다. 인간이 또 다시 사탄의 유혹에 빠져들은 것이다. 원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인간은 이제 지구에서도 쫓겨날 판이다.
 이러한 아메리카에 비해 영국은 다음이 자기 차례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마치 영국제국주의의 탐욕이 뉴욕테러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싶다는 듯이 미국보다도 한술 더 뜨는 분위기이다. BBC방송도 과거 영국의 식민지약탈에 대해서는 단 한번의 반성이나 고발도 없지만 독일의 파시즘을 경계하는 일에는 24시간이 부족하다. 스스로의 과거조차 인정하지 않는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부르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뉴욕의 테러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지구마을""을 꿈꿨지만 아직도 세계는 국민국가의 이해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다. 물론 국민국가는 자국자본의 이해를 절대적으로 대변하지만 인종적 종교적 편견도 한몫을 거든다. 아메리카는 테러를 빌미로 제국주의세력이 연대하는 세계전쟁을 의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폭력은 저항을 받을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