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흙탕물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난 하얀 장삼자락이 허공에 굵고 섬세한 선을 그려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에 파묻힌 얼굴은 보일듯 말듯 신비감을 자아냈다.
전반부가 번뇌라면 후반부는 법열 뒤 찾아온 해탈이었다. 두둥 두둥 두두둥, 무대를 가득 메운 대북소리는 규칙과 불규칙, 강약을 오가며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불교문화 속에서 1600여년을 살아온 한민족의 역사문화적 DNA를 건드리는 몸짓과 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를 볼 때마다 근원을 알기 어려운 슬픔과 환희의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21일, 승무를 관람한 곳은 서울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김묘선 전수관'에서였다. 인천에서 시작한 '김묘선 전수관'의 서울 개관을 축하하는 공연이었다. 일본과 미국에 세운 전수관에 이은 10번째 개관이었다. 이날 승무는 '공감 M아트센터' 장옥주 대표의 축하공연으로 진행됐다.
이매방 선생의 직계 제자인 김묘선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승무'를 가장 잘 추는 명무로 인정을 받는 것은 끊임없이 연구·노력하는 열정 때문이다. 이날 김묘선 전수관 개관 역시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우봉 이매방춤 보존회 김명자 회장, 전 한국문화원연합회 최종수 회장 등 많은 문화예술계 거장이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의 모습도 보였고, 소리꾼 장사익이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은 "승려이자 승무 조교인 김묘선 무용가는 춤으로 세상에 자비를 베푸는 부처"라며 우리 춤의 세계화를 실천하며 후학을 길러내는 김 무용가에게 찬사를 보냈다. 김묘선은 인사말에서 "35년 전 시작했으나 앞으로도 얼마나 걸어가야 할지 모를 춤길이다. 그래도 지금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5살이던 82년 인천에서 무용을 시작한 '인천무용가 김묘선'은 이제 세계적 무용가가 됐다. 전통문화가 소중한 이유는 삶과 역사, 문화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K팝이나 한류의 기원 역시 전통춤과 소리에서 비롯한 것이다. 전통 문화예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예술가들을 아끼고 보호할 때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