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동""이라 불리는 학익동과 숭의동 `옐로하우스"". 인천의 대표적인 윤락촌이라 할 수있는 이곳을 세차례 찾은 후 업주 대표들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30일 오후 4시. 업주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학익동 특정정화구역 초입에 있는 정화위원회 사무실. 들어가자마자 한쪽 산부인과용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매주 월요일 구청 보건소 담당의사가 이곳에서 윤락여성들의 성병과 에이즈 검사와 내진을 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경찰이 단속을 하고있으니 장사가 안돼요. 아가씨들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갔어요.”
 6월 11일부터 경찰의 집중 단속이후 두 달 동안 장사를 못했다며 시작하는 업주들의 푸념은 끝없이 이어진다. “상담하고 매주 검사 받고 나라에서 관리 다하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여기만 단속을 하냐고요.”
 총58개 업소가 몰려있는 학익동에는 각 업소마다 많게는 4명의 윤락여성들이 있지만 지금은 평균 2명 정도로 줄었다.
 “여기 단속한다고 애들이 집으로 갈 것 같아요? 다 돈벌어서 생활비 보태는 애들이 대부분인데 어디가서 뭘해서 돈법니까? 어차피 갈곳은 뻔합니다.”
 `행간""이라 불리우는 업소 중간관리자인 50대 여성이 한마디 하자 모여있던 업주들도 모두 맞장구 친다.
 당사자인 윤락녀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몇일 전 취재 양해를 구했던 숭의동으로 향했다. 6시 반이 넘은 시간. 즐비하게 늘어선 유리벽 뒤엔 화장과 머리 손질에 바쁜 그녀들이 있었다. 그 중 송희(가명 30)라고 하는 한 여성을 먼저 만났다.
 집에서 빚진 2백만원 사채를 갚기 위해 `전화발이""(여관 등에서 윤락을 원하는 손님을 전화로 연결해주거나 직접 역할)를 시작했다가 대구 자갈마당을 거쳐 이곳까지 왔다는 그녀는 눈물도 많이 흘렸단다.
 “단란주점이니 전화방 모두 몸을 팔지만 사창가는 더 낮게 생각하고 있어요. 쉽게 오겠다는 생각 못하지만 돈을 모으기에는 제일 낳기 때문에 사창가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조금만 고생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꿈이에요.”
 지금은 꽤 돈을 모아 인근 가게하나를 샀다는 그녀는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다. 돈은 업주와 50대 50으로 나눠갖는다.
 “왜 저렇게 단속하는 겁니까? 단속해도 형사들은 밖에서 핸드폰으로 불러내요. 자기들은 할 꺼 다하면서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할 말이 있다며 뒤늦게 인터뷰를 한 대기실로 들어온 남이(28)라는 여성이 꺼낸 말이다.
 “남자들이 연예(성관계)하러 오면서 제일 많이 묻는 말이 뭔지 아세요. 나이에요. 50대가 넘은 아저씨도 십대 없냐고 물어요. 어차피 여자나이 30대 넘어가면 이 일 계속할 수 없어요.” 30세가 되는 해 12월 초순까지만 일해서 돈벌어 작은 십자수 가게를 차릴 계획이었는데 기약 없는 단속 때문에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한단다.
 “남들은 여기서 너무 쉽게 돈을 번다고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방안에서 남자와 여자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별의 별 남자 많아요. 나중에 돈 돌려 달라고 협박하는 사람부터 폭력 쓰는 사람까지 그런 사람 싸우지 않고 조용히 내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야 프로라고 해요.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에요.”
 다른 일 해보려고 이것저것 많이 배워도 봤단다. 공장도 다녀봤고 경리도 했는데 한달에 들어오는 돈은 50~60만원. 엄마 약 값 보내기도 벅차다고 했다.
 제일 속상한 일은 뭐냐고 물었더니 벽마다 붙어있는 윤락행위방지법 표지판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한다.
 “바뀐 저 법 때문에 윤락행위하다가 걸려서 경찰서에 가면 영원히 윤락녀로 낙인이 찍혀요. 부모님 알게될까바 경찰서가는 일이 제일 무서워요.”
 “지금 저렇게 단속해서 손님 없는 것 뻔히 알면서도 단속이란 이름으로 아무 방이나 벌컥벌컥 열어요. 아무도 우릴 인간처럼 보질 않아요. 저희는 사생활도 없고 인권도 없다고요.”
 아직 목표한 돈이 모이질 않았다는 그녀는 여기서 일을 할 수 없으면 다른데로 가겠다고 했다.
 “전화발이를 하거나 평택 `히파리""(길거리에 서서 자동차 승객을 기다렸다 윤락을 하는 일) 아니면 안마시술소로 가야죠. 인터넷도 있잖아요. 만나서 즐기다가 돈도 벌고 여기처럼 검사 안받아도 되고.”
 내가 만난 여성 모두 적금과 인생계획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었다. 결혼을 꿈꾸는 여성도 있고 어려운 집안만 일으키면 자기사업을 벌여 돈을 벌 계획을 가진 여성도 있다. 20대 후반이 대부분인 이곳 여성들은 낮과 밤이 바뀐 채로 두평 남짓한 방에서 20대를 보냈다. 빈곤한 여성들, 그들을 구제할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있지 않는 한 또다시 제기되고있는 공창제도의 논란도 우스울 뿐이다. 그누구의 보호를 받아본적이 없는 그녀들은 돈이 되지않는 다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