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자주 만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다시 찾고 싶은 도시는 아늑함과 편안함 그리고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양하고 풍성한 곳이다. 프랑스와의 인연이 반세기가 가까워오는 필자는 주로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했고 오늘날도 파리를 계속 찾고 있지만 리용이라는 도시 또한 자주 찾는다.

▶기원전 59년 로마제국 총통으로 갈리아(프랑스) 지역 부족들을 평정한 쥴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 원정기』를 보면 당시 도시다운 모습을 지닌 곳은 리용뿐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론 강과 손느 강을 끼고 있는 리용은 수운(水運)이 편리했을 뿐더러 광산물과 임업자원도 풍부해 경제적으로도 앞서나가는 도시로 꼽혔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금융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후 복구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리용에서는 "일하며 배운다"는 구호로 중국의 젊은이들을 근로자로 불러들였다. 이때 리용으로 갔던 주은래와 등소평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밑그림을 그렸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체험한 이들이 중국에서의 공산혁명을 꿈꾸던 곳이 리용이라는 도시였다.

▶그로부터 근 한 세기가 지난 2014년 시진핑 주석은 프랑스 국빈방문의 첫 기착지로 리용을 택했다. 파리에 도착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엘리제궁에서 회담하고 만찬에 참석하는 대신 리용의 쌩텍쥐페리 공항에서 주은래와 등소평이 일하던 공장으로 직행해 화환을 바치고 묵념을 하는 장면이 프랑스 TV를 통해서 생중계되었다. 외국에서의 건국 지도자 행적까지 찾아가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지켜본 프랑스 시청자들의 심경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달 유럽 여행 때 리용을 다시 찾았다. 50여 년 동안 미슐랭 최고등급인 3개 스타를 유지하다가 연초에 별세한 폴·보퀴즈의 레스토랑과 주은래·등소평의 지워지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폴·보퀴즈 레스토랑은 선친을 모시고 갔던 추억이 있고 주은래·등소평 현장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평가와 예우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24시간 동안 5.8유로(약 8000원)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표로 리용 시내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맛진 음식을 들고 고대 로마시대 유적부터 20세기 역사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리용을 떠나면서 또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이 도시의 매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