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 김진국 논설위원
한복 입은 차인(茶人)의 손끝에서 맑고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차를 따르는 손과 다기가 하나처럼 보였다. 찻잔에 담긴 차는 연녹색을 띠었다. '차인의 영혼'인 것일까. 찻잔에서 피어오른 향이 연기처럼 허공에 머물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입으로 들어온 차가 한동안 입안을 감돌다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늑하고 편안했다.

주말이던 지난 24일~25일 충북 청풍은 차의 향기로 가득했다. 매년 2월과 8월 청풍리조트 레이크호텔에선 '한국차문화협회 동계·하계연수회'가 열린다. 엄격한 과정을 거친 차인들을 선발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이번 50회 동계연수회에선 제53기 2급 지도사범과 3급 준사범 98명이 수료증을 받았다. 지금까지 협회가 배출한 차인만 4000여명에 이른다. 일본 교토(京都)지부 회원까지 더하면 27개 지부 3만여명의 회원이 차를 공부하고 있다. 연수회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는 행사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협회는 이번에 특별히 故(고) 인설 이귀례 명예이사장 3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 조동암 인천시부시장, 임봉대 인천박물관협회이사장을 비롯한 외빈들과 회원들은 헌향·헌화와 배례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인설은 우리나라 차문화 1세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잠자고 있던 우리나라 전통 차문화를 대중적 전통문화의 반열에 올려놓은 '차의 거목'이다. 평소 그는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라"는 차의 정신을 언행일치의 삶으로 실천했다.

인설의 뒤를 이어 한국차문화협회를 이끌고 있는 최소연(가천대 교수) 이사장은 국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지부를 해외로 확장시켰다. 우리나라 전통 차문화의 세계화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교토 우지차박람회에 참여해 교토지부 회원들과 함께 규방다례와 생활다례와 선비다례를 시연하며 다도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 일본인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주목할 점은 굵직한 한국차문화협회 행사들이 대부분 인천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군산 출신의 인설선생이 생전 인천에 정착해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강릉이 언제부터인가 커피의 도시로 된 것처럼, 인천은 '차의 도시' '다도의 도시'로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셈이다. 다만 인천의 브랜드로 세우려는 마케팅 전략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청풍호수에서 봄바람이 불어왔다. 호수 위로 넓게 퍼져나가는 차향이 물결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