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또 바다다. 또 구조다.
지난 3일 영흥도 진두항을 떠난 낚싯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2명 중 15명이 숨졌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해양경찰의 구조활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신고를 받은 해양경찰의 구조가 늦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시민들은 세월호 판박이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해양경찰 대응을 떠올린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우리는 너나 없이 해양경찰의 전문성을 이야기했다. 사고 현장에 신속하게 갈 수 없었던 장비, 긴급하게 투입할 수 없었던 잠수 인력 등이다.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서다.

해양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소리가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 아직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진두항 신고를 접한 해양경찰은 야간운행이 가능한 신형 고속단정이 고장 나, 육상 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출동 후에도 민간어선을 얻어 타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현장에 긴급 투입해야 할 고속단정은 민간선박과 함께 묶여 있어 긴급 출동이 불가능했다. 민간어선에 묶인 고속단정을 풀고, 민간어선이 떠내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다시 묶어줘야 하는 것도 해양경찰 몫이었다. 해양경찰을 위한 전용 계류장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해양경찰은 부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문성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에 걸맞은 인프라를 갖춰야 가능하다. 해양경찰들의 현실은 여전히 세월호 침몰사고 그쯤 어디엔가 서 있을 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해양경찰이 국민안전처 소속일 당시, 전국 94곳 안전센터 중 구조정과 구조보트를 모두 갖춘 안전센터는 15곳으로 16%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속한 출동으로 초동조치가 시급하지만 민간 선박을 수배해야 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경비함정과 별도로 연안사고의 초동대처를 위해 구조정과 구조보트 등 연안구조장비 보급 확대가 강조되기도 했다.

올해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해양경찰 고속단정 폭발사고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올해만 해양경찰 고속단정 3척이 잇따라 폭발했다. 지난 9월26일 불법조업 외국어선 단속에 나섰던 서해5도특별경비단 소속 한 해양경찰은 이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있는 장미마저도 해양경찰을 위협하는 사실상 흉기인 셈이다.
내년 해양경찰 예산 역시 실망스럽다. 본보 보도에 따르면 해양경찰청의 2018년 안전·구조 관련 예산은 2193억원이다. 올해 예산 2588억원보다 400억원이 낮다. 이 중 함정 건조비와 항공기 등의 장비 도입 사업비는 올해 1840억원에서 내년에는 1625억원이다. 연안구조장비 예산 역시 198억원에서 156억원으로 줄었다. 결국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프라, 확보했다 하더라도 고장이 잘 나고 폭발 위험까지 높은 장비를 갖춘 해양경찰이 어떻게 대응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교훈으로 한다던 정부는 더 확실한 처방을 내놔야 한다. 수년째 강조됐던 바다 위 전문성을 투자 없이 얻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낚싯배 등 민간선박 등도 안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구조 상황을 놓고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사고 당사자인 선박들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객을 태우는 그 순간부터 민간선박 역시 안전시스템을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영흥도 낚싯배 사고가 무색할 정도로 낚싯배 안에서 벌어지는 술판 등 승객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바다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목 좋은 곳을 선점하기 위한 낚싯배들의 고속 경쟁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들이 현장에서 나올 정도다.
아무리 해양경찰 초등대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고를 예방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낚시 인구가 전국적으로 3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부디 민간어선, 승객들의 안전의식도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되돌아간 게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