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진 사회부 기자

지난 14일 오후 2시30분. 인천 부평 A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종이컵 부대가 나타났다. 작은 손에 쥐어진 종이컵에는 떡볶이, 닭튀김이 추운 날씨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종이컵을 앞세우고 서서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컵 안 내용물을 비워갔다. 피아노 학원이 3시까지라며 급하게 입속으로 욱여넣는 초등학생도 보였다. 비슷한 시각, 근처 다른 초등학교 분위기도 비슷했다.

인천지역 초등학교에선 무상 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평일에 점심 거를 일이 거의 없다. 밥 먹고 2시간도 채 안 돼 분식집을 찾길래 급식이 부실했나 싶어 이날 A초등학교 식단표를 확인했다. 주꾸미 볶음에 햄전이 곁들어진 메뉴였다. 적어도 메뉴 구성에선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아침, 점심, 저녁 세끼는 어른들 기준이다. 성장기 어린이들은 밥 먹고 돌아서면 배 꺼지는 시기다. 학교 마치고 영어, 피아노 학원 가기 전에 학교 앞에서 간식을 사 먹는 건 19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십수 년 전 초등학교 하굣길 풍경과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은 셈이다. 소비력이 약한 초등학생 소비자에게 관심 있는 자본이 없으니 이들에게 허락된 메뉴는 그때나 지금이나 종이컵에 담긴 음식뿐이다. 아니면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사탕이나 젤리 정도다. 슈퍼 봉지 과자도 2000원이 넘는 요즘, 그나마 분식집, 문방구에선 여전히 몇백 원짜리 제품을 팔며 초등학생 간식을 책임지고 있다. 값이 싸 불량식품이라고 덮어놓고 의심만 하기엔 박리다매로 수입을 올리는 그들의 노동력이 안쓰럽다. 문방구에서 파는 100~200원짜리 군것질 십여 종을 확인해보니 예전과 달리 새끼손가락만 한 젤리에도 영양성분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 간식 환경이 여전히 1990년대 종이컵 음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애석한 일이다. 아이들 밥 문제도 겨우 합의점을 찾은 상황에서 간식 문제는 아직 배부른 논의일까.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주부 얘기다. "애가 좋아하는 학교 앞 분식집에 한 달 치 선금을 맡기며 '아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조미료라도 좀 줄여 주세요'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주문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