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육아는 특정 성별이 도맡아야 하는 일이 아니다. 저녁 산책길에 한 손에는 강아지 목줄을,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며 걷는 남자들을 여럿 마주했다. 부인이 동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저 보통의 풍경이었다.
오늘 아침에 커튼을 걷고 맞은 편 건물을 보았다. 창이 커서 커튼만 걷으면 안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보인다. '학교'나 '유치원'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맞은 편 건물이 저학년 아동의 교육기관이었던 듯하다.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8시 무렵이었다.
이로써 얻은 결론은 두 가지이다. 육아는 여성의 (천부적)일이 아니라는 것, 아이는 국가가 기른다는 것이었다. 엄마(여성), 아빠(남성)를 구분하는 것이 무색하게 누구든 이 나라에서는 육아를 하고 있었다. 성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한국의 육아 실태를 떠올리면 성별 문제를 짚어야만 하겠다.
아빠는 출근 시간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유모차를 끌어 아이를 산책시킨다. 어떤 성별의 시혜거나 혹은 의무가 아니라 누구나 하고 있는 생활이며 아이의 보호자로서 그의 역할일 뿐이다. 성별은 육아를 하거나 하지 못하는 데에 필연적 이유가 아니다.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것은 국가 정책이 따라주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업무 중에 육아와 관련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회사의 업무 규정은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직원의 생활'을 중심으로 정해진다. 모성애를 가진 자만이 육아를 하는 것도, 그저 '개인'의 노력으로 육아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했다. 육아의 평범함은 가능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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