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내용을 일부 담고 있음을 밝힌다.
영화 <옥자>가 국내 일부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다. 요약컨대 이 영화는 '옥자'라는 유전자조작 슈퍼 돼지 '옥자'와, 그와 10여 년 같이 살면서 가족으로 여기는 '미자'의 이야기로, '옥자'의 운명에 더욱 방점이 찍혀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 대해 '육식에 대한 반성적 사고', '자본주의와 육식' 등 여러 주제에 주목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영화 곳곳에서 '옥자'를 둘러싸고 드러나는 '위선'의 모습이 흥미롭다. 옥자가 '식품'인가 아닌가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영화는 꽤 다양한 위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루시 미란도가 싼 값에 훌륭한 맛과 질의 식량을 대량으로 판매하겠다는 자신들의 목표가, 유전자 조작 식품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를 두고 소위 '친환경 마케팅'을 벌이는 모습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뿐만은 아니다. 루시 미란도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육식'에 회의감을 느끼는 관람객의 뒤통수를 한 번 더 치는 격인데, 애초에 동물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전에 영화에서 소비자가 '유전자 조작된 동물'은 먹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영화 속 동물 ALF(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해방전선)의 모습을 보고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도 없다. ALF 멤버의 열연은 차라리 일종의 촌극 같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유전자 조작에 각종 유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서는 입에 들어올 수 없음을 우습게 연출한 장면이라든가, 마치 '사람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면서 '동물을 위한다'는 연출에 심취해있는 ALF 리더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훌륭하게도 <옥자>의 메시지는 단선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하에서 하나의 인간적 신념은 그 신념에 배반되는 다른 전제를 수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그야말로 '위선'의 시대는 아닌가. #영화 #옥자 #okja #위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