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2년 발표되었던 7·4남북공동성명은 한국전쟁 이후 맺어진 최초의 남북 간 합의 문서이다. 한반도 문제의 주요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정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던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당국자와 직접 접촉하여 최초로 남북한 통일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큰 사건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이루어진 합의는 이후 1985년 경제회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근거로 활용되었고, 지난 2000년 남북한 최고정상들이 만나 6·15공동선언을 발표하는 역사적 사건의 첫 걸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극적으로 조성되었던 남북화해 분위기는 이듬해 8월 북한이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거부하면서 종료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열렸던 남북한 정부의 대화와 협력 분위기가 지속될 수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던 닉슨이 사임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힘을 통한 평화'로 전환되었기 때문이고, 내부적 요인은 남북한 모두 7·4남북공동성명을 남북화해·협력의 계기가 아닌 정권의 권력안보를 위한 국면전환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7.4남북공동성명 합의의 대상이었던 북한을 실체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다른 국가의 북한 접근도 강력하게 봉쇄하며 유신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빌미로 삼았다. 같은 시기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미국의 데탕드 무드를 이용해 동·서독 통일의 기반을 다졌던 것과 달리 남북한은 이것을 각자의 권력 체제를 다지기 위한 기회로 활용했다. 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남북한 모두 권력을 위한 독재체제였다.

강대국의 외교정책과 세계전략을 약소국이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독일 통일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는 강대국과의 갈등으로 실각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독일 통일의 기획자였던 에곤 바르의 다음 두 가지 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통일을 항상 생각한다. 그러나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적을 기다리는 건 정치가 아니다." 통일은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책이다. 우리는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며,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