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전 대금을 배운 적이 있다. 원고지를 90도 돌려놓은 듯한 전통 악보는 외계 기호로 다가왔다. 손가락 쓰는 운지법(運指法)을 헤매다가 두어 달 동안 삑사리만 냈다. 결국 초급과정을 넘지 못하고 포기했다. 국악은 필자에게 그야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새얼 국악의 밤'이 지난 주 수요일 인천종합문예회관에서 열렸다. 1993년 첫 무대를 마련했던 국악 음악회는 올해로 25회 째로 한해도 거르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이 음악회에 가서 국악을 감상하기로 마음먹었다. "초대권 있어도 제 시간에 맞춰오면 입장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인의 말에 따라 한 시간 가량 앞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1500석의 대공연장이 꽉 찼다. 해마다 매진사례라더니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인천신송초교 국악오케스트라부터 팝페라 가수 마이클 리의 무대까지, 필자의 손가락과 머리를 쥐나게 했던 경직되고 어려웠던 그 국악이 아니었다. 흥겹고 쉬웠다. 이 국악 공연을 드물게 관람했지만 매번 우송되는 프로그램 안내지 만큼은 꼼꼼히 챙겨 봤다. 거의 매년 '아리랑'이 연주 레퍼터리로 포함돼 있었다. 올해도 소리꾼 유태평양이 '홀로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렀다. 게다가 앙코르로 모든 출연자와 관객들이 하나 되어 '아리랑'을 불렀다. "오늘 우리는 다 함께 평화를 기원하는 백성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프로그램 안내지 속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의 인사말대로 관객 모두가 겨레의 노래, 백성의 노래를 함께 듣고 불렀다. 우리 몸 속에는 어느 지역의 아리랑이든 분명 아리랑의 DNA가 하나씩 스며있는 듯했다.

인천 지역에도 개항 시절, 제물포항에 기대며 살았던 이들의 애환을 담은 '인천아리랑'이 구전돼 불렸다. '인천 제물포 모두 살기 좋아도 왜인(倭人) 위세에 난 못 살겠네 흥/ 에구 대구 흥 단둘이만 사자나 에구 대구 흥 성하로다 흥/ 아리랑 아라랑 아라리오 아라랑 알션 아라리아(하략)'

머지않아 '새얼 국악의 밤'에서 인천 백성의 노래 '인천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는 바람을 하며 귀갓길에 올랐다. 차량 속도는 나도 모르게 평소의 휘모리에서 진양조로 느긋하게 바뀌었다. 집안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을 대금이 불현듯 생각났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