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오버부킹과 관련한 승객 대우가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승무원을 탑승시키기 위해 하차시킬 4명의 승객을 무작위 선출했다. 그 중 화교 출신의 아시안 의사가 검진을 위해 돌아가야 한다며 하차를 거부했고 유나이티드 항공은 시카고 경찰을 호출하여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이전에도 인종차별과 혐오의 표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갈등이 심화되고, 이와 관련한 '혐오' 범죄가 연속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 볼만하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혐오'에 의한 폭력은 마치 일종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또 정당화되는 듯하다. 일련의 사례를 보아 알 수 있는 것은 '차별'과 '혐오'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며 자본주의는 이러한 흐름을 옹호하는 혐의를 가진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차이'보다는 '차별'을 주된 동력으로 삼는 것만 같다. '차이'가 동등한 가치 선상을 전제하는 것과 달리 '차별'은 상대와 자신의 가치에 우열을 매길 때만 어느 한쪽에 가치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안에서는 이러한 '차별적 가치'를 증명해보여야만 자본으로 그 대가를 부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종이나 성별과 같은 '차이'는 '차별'의 이유로 둔갑한다. 이 '차별'은 우열을 가릴 수 없고 가리지 말아야 할 '인권'이라는 절대적 가치에도 잣대로 작용한다. '차별'은 절대적 인간적 가치 안에서도 우열을 두게 하고 이러한 차별적 사고는 열위로 상정되는 존재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며 곧 '폭력'을 정당화한다.

인종차별도 여성혐오도 결코 우연히 발생되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더욱 '정당화'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경각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차별-혐오-폭력'의 연쇄에 대하여, 그리고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떤 식으로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유나이티드항공 #인종차별 #혐오 #폭력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