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60년대 부평 미군부대 주변에 성행했던 음악클럽은 현재 세계인이 주목하는 K팝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평구문화재단이 제작한 창작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1950~60년대 부평 미군부대 주변을 무대로 한 대한민국의 음악역사를 담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부평구문화재단
개항과 함께 서양음악 전파 … '한류의 중심'으로 우뚝
50년대 이후 신포동·부평 미군클럽 '재즈' 등 퍼뜨려
교회·학교선 클래식선율 … 70~80년대 공단엔 민중가


음악은 시대의 거울이라 했다. 현재 인천은 한류관광콘서트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 한류를 주도하는 음악축제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왜 인천인가? 개항기 서양음악이 전파됐고 중구 신포동과 부평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팝 음악이 울려 퍼졌다. 다양한 음악이 섞이고 발전하면서 오늘날 K팝이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왜, 인천인가
개항, 그리고 일제강점기, 광복, 미군주둔,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인천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음악에서 출발해 항구와 망국의 설움, 실향, 성장기 진통 등 다양한 서민적 애환과 삶이 담긴 수많은 대중음악이 태동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모태가 된다.

인천 신포동은 광복 이후인 1950년대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대들이 주둔하면서 스탠더드 팝송과 같은 음악을 취급하는 클럽들이 즐비했던 곳이다. 이런 스탠더드팝은 송창식, 키보이스의 김홍탁씨와 같은 인천의 대중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애스캄 부대가 주둔했던 부평 일대 역시 미군클럽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산실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이 곳에선 신중현, 조용필과 같은 미8군무대 출신 빅스타들이 노래를 했다.

주안공단, 부평공단 등에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음악이 탄생했으며 1980년대 운동권들의 가요가 많이 불려지던 노동음악의 메카였다.

▲음악도시 인천
비록 강제개항이기는 하지만 인천은 개항과 함께 각국 외교관은 물론 상인들이 몰려 들고 전국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인들이 몰려 들던 도시였다.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서양음악의 전파지가 됐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움을 달래준 것은 '타향살이'(1934), '나그네설움'(1940)과 같은 가요였다. 광복 이후엔 '럭키서울'(1948), 한국전쟁 이후엔 '아리조나 카우보이'(1955)와 같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럭키, 모닝, 샌프란시스코 등등 당시 가사엔 영어단어가 즐비했다. 전쟁을 통해 만난 미국은 은인의 나라였고, 미국인들이 사는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이후 팝송번안과 통기타, 댄스, 발라드, 힙합 등을 거쳐 오늘의 K-POP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인천은 그런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중심에 있었다.

1950~60년대, 중구 신포동엔 예닐곱개의 미군클럽이 성업 중이었다. 신포동에선 언제나 재즈, 블루스에서부터 스탠더드 팝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서양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서양음악에 우리 전통가락을 접목한 음악을 만들어낸 가수 송창식은 어린 시절, 신포동의 팝음악을 들으며 가수적 감수성을 키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록그룹 '키보이스'의 김홍탁은 중학교 2년 때부터 내동에 살던 한 미군으로부터 기타를 배워 훗날,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긋는다.
애스캄(ASCOM)부대가 있던 부평 지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부평 미군 부대 에스캄은 8·15해방 후 지금의 인천 산곡동 현대백화점 부근에 육군 조병창이 폐쇄되고 미8군 보급창으로 들어섰다. 에스캄은 Army support command 군수 사령부의 약자로 당시 주위에 많은 미군 부대들이 상주해 있었다. 해방 후 부평에 상주한 미군 부대들은 지역 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에스캄 주변과 그 일대 신촌은 미군을 상대로 한 상업지구들이 번성했다.

부평, 의정부, 동두천, 문산, 송탄, 파주, 부산, 대구 지역에 미국 주둔캠프가 있었고 해당 지역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노래와 연주가 있는 클럽들이 있었다. 당시 그 무대를 미8군무대라 불리게 된다. 당시 미8군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은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는 것이었고 이 무대를 통해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간 가수들이 배출됐다.

미8군 산하 주변에는 클럽수가 264개까지 번성했다. 이때 이곳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당시 대한민국 수출소득보다 높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대중음악사 개론>에 따르면 미8군쇼에서 활동하던 쇼단을 보면 14명 이상으로 구성된 빅쇼(big show)와 8명 이하로 구성된 스몰쇼(small show)로 나눌 수 있다. 빅쇼의 경우 3~4명의 가수, 3~4명의 무희, 7~8인조 악단 내지 10인조 이상의 빅밴드로 구성된다. 스몰쇼의 경우는 1~2명의 가수, 1~2명의 무희에 작은 규모의 캄보(combo) 밴드로 편성됐다.

이를 종합해 보면 신포동과 부평의 미군클럽, 미8군무대는 지금의 '한류'를 잉태한 자궁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클래식음악'의 고향 역시 인천이다. 1885년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탄 배에는 피아노와 서양식 악보가 실려 있었다.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제물포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찬송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인천의 교회와 학교에서 시작한 종교음악은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나라 전역에 클래식음악의 꽃씨를 퍼뜨린다.

'민중가요'는 또 어떤가. 70~80년대 부평공단을 비롯해 인천의 공단이 민중가요의 산실이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록수'는 1977년 5월 인천 부평 봉제공장 취직한 김민기가 동네노동자 합동결혼식 축가로 작곡했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80년대 부평에 살던 박영근 시인이 쓴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였다.

이쯤 되면, '인천'은 대중음악, 클래식, 민중가요를 아우르는 음악의 메카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천시가 '음악도시 인천'을 규명한다며 현재 인천의 노래를 수집 중이다. 이것 만으로 음악도시 인천을 부르짖기엔 뭔가 부족하다. 대중음악에서부터 클래식, 민중가요를 아우르는 인천음악의 역사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나라 음악사를 재정립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세계 음악의 중심 인천
2000년대를 지나며 인천은 인천국제공항과 항만, 그리고 인천의 발전상을 담은 새로운 장르의 노래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고향을 떠나 인천에 자리를 잡은 부모, 조부모 세대와는 달리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인천의 정서를 안고 자라난 세대의 최신 노래도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하대부속고교 출신들로 구성된 리듬파워는 자칭 타칭 인천의 아들들로 콘셉트를 정해 월미도와 자유공원 등을 배경으로 한 자유로운 장르의 노래를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인천 출신으로 동산중·고교 시절 즐겨 찾던 신포동을 주제로 '추억의 신포동'을 발표했다.

신포동은 옛인천의 명동이라 불린 곳으로 중장년층의 마음의 고향이다. 옛 지명은 '터진개'라 불렸으며, 신포는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포동은 30~40년 된 집들이 많은 곳으로 골목길 문화가 정겨운 곳이며 가사 속에서 옛 추억을 그려볼 수 있다.

신포동은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시장과 상업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재래시장인 신포시장은 19세기 말 이곳에 자리잡은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들을 상대로 고급 채소를 파는 푸성귀전의 등장에서 시작됐다.

인천의 노래는 비단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천국제공항 등 현재 인천의 발전상을 담은 노래가 선보여지고 있다.

인천시는 2016년 개항부터 최근까지 인천을 무대로 한 대중음악, 특히 가요를 중심으로 인천이 왜 음악도시인가, 인천의 가치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라는 의미를 담아 '음악 속 인천'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음악을 통한 인천의 가치를 높이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렇게 인천이 소재가 된 인천의 노래 510곡을 수집했다. 세부적으로 민요 38곡, 가곡 4곡, 대중가요 197곡, 교가 271곡 등이다.

'인천의 노래' 추진단이 발족돼 인천의 노래 발굴에 나섰다. 시민 5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연안부두(김트리오), 내고향 인천항(주현미), 아름다운 인천 등의 노래를 선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노래를 중심으로 '인천의 노래 선정 애인 콘서트'를 펼치기도 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