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지난 14일 오후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 흐린 날이지만 포근해진 날씨 탓인지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실업자 수십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멍한 눈으로 한없이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는 사람,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지나 않을까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사람 등.

IMF체제가 만들어낸 우리사회의 쓸쓸한 영상들이다.

어떤 실직자는 따분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하루에 다섯바퀴를 돌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한 집안의 가장이요 자랑스런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갈 곳이 없어 정처없이 떠도는 「사회적 망명자」 신세가 된 것이다. 지난달 말 현재 인천지역에만 이같은 실직자는 모두 10만6천여명. 지난 1월말보다 무려 4만3천여명이 늘어난 것이다. 인천지역 경제활동 인구가 1백11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10명당 1명이 직업이 없는 셈이다. 인천시내 곳곳에 실업자가 점점이 박혀있는 것이다.

 실업자가 쏟아지면서 경제난과 좌절감을 못이겨 자살과 강ㆍ절도가 잇따르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폭력이나 살인으로 연결되는 등 사회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있다. 경제위기 한파로 이른바 「IMF형 범죄」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1일 낮 1시15분쯤 인천시 남구 도화 2동 제물포역 지하보일러실에서 이역 부역장인 양모씨(49)가 배관 파이프에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역무원 배모씨(56)가 발견했다.

 양씨는 지난해 증권에 손을 댔다가 IMF이후 증시 침체로 6천만원의 빚을 지게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사는 고모씨(46)는 직장을 잃은 뒤 생활고로 잦은 부부싸움을 하다 지난달 27일 오전 5시8분쯤 홧김에 집에 불을 질러 방화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최근에는 「60년대에 성행하던」 좀도둑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다. IMF시대를 맞아 국민소득과 사회분위기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범죄유형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천지검 이천세 검사는 『보통 실업률이 높아지면 실직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현실불만이 직접 표출돼 그냥 넘길수 있는 문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폭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며 『경찰의 방범활동 뿐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계도활동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도 실직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해지고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점집을 찾는 사람이 느는 것도 IMF체제가 만들어 낸 또다른 현상.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은 몇시간씩 기다려야 점을 볼수 있고 시내 서점마다 토정비결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신경정신과 신창호과장은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사회가 개인들에게 갖는 감시기능 등이 약해지고 따라서 개인들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확산돼 혼란이 야기 될 수 있다』며 『이런 때 일수록 사회가 개인들에게 공동체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