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울음소리와 창공을 울리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들려오는 최전연에서, AK 소총 한 자루에 전 생명을 의지한 채 밤마다 잠복근무를 해야하는 민경(민사행정경찰)대원들의 생활은 사실상 외롭고 고달팠다. 쏟아지는 잠과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듯한 배고픔, 손끝과 발끝부터 야금야금 얼어오는 듯한 지난 겨울의 강추위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려로 인민군대에 초모되었다고 하는 공화국의 하전사들은 그 정도의 고통을 핑계로 내세우며 불평불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모두들 외롭고, 재미 없고, 고달픈 것만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사(戰士)나 상등병(上等兵) 때는 그래도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하사(下士)로 진급하여 몇 차례 사단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나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생활이 차차 몸에 배면서 천연덕스럽게 비판과 처벌의 올가미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생활들이 3~4년씩 쌓여 관록이 붙으면 남반부 국방군 아새끼들의 고성기 방송 내용도 거침없이 입초시에 올리면서 자기 생각들을 섞어댔다.

 『국방군 아새끼들은 정말로 6개월마다 휴가를 갈까?』

 『주말에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 에미나이들도 만난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인구 동무! 에미나이들과 한 이불 속에 같이 있으면 기분이 어더렇갔어?』

 며칠 전 야간잠복근무 초소에서 강철호 하사가 묻던 말을 회상하며 인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강철호 하사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인구는 뭐라고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사관장과 함께 후방사업을 하기 위해 금촌 읍내나 개성직할시 쪽으로 나갈 때는 더러 있어도 에미나이와 함께 있어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철호 하사가 또 그런 질문을 한다면 이제는 자신있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고 자꾸 처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려웠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가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에미나이와 한통속이 되고 말더라고. 그리고 에미나이가 홀랑 벗은 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와 바지를 벗겨 내리고, 물수건으로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닦아주니까 꼬투리가 고사포처럼 치솟아 오르더라는 말도 경험자답게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철호 그 자식이 사관장처럼 에미나이하고 라체오락 해 봤어, 하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뭐라고 대답해 줄까?

 인구는 큰 고민거리를 짊어진 사람처럼 가늘게 한숨을 쉬며 제 그것을 바지 속으로 챙겨 넣었다. 소변을 다 보았는데도 가뿐한 느낌이 없고 아랫도리가 계속 묵직했다.

 옘병할, 자꾸 화를 내면 어카나.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