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훈 '조건부 징계 해제'는 정당한가

신종훈측 "번복약속 믿고 사인 … 대한복싱협 날인도 없어"
무효 피력 불구 AIBA "국내대회 출전 불가" 굴욕적 단서
대한복싱협 "불량학생 구제" 주장 … 신, 곧 중대결심 발표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만에 아시안게임 복싱 종목에서 고국에 금메달을 안긴 신종훈(인천시청·사진)이 은퇴를 포함, 거취와 관련해 곧 중대한 결심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훈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결단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대한복싱협회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이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징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서 대한복싱협회가 그간 보여준 행보와 최근 내놓은 결과를 지켜보면서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신종훈 측의 입장이다.

반면 대한복싱협회는 "잘못한 게 많은 신종훈이지만 우리가 노력해 겨우 구제 방법을 찾아 낸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조건부 징계 해제?…사실상 항복 요구"

대한복싱협회는 지난 22일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으로부터 신종훈에 대한 1년 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해제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국내 대회는 뛸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AIBA프로복싱(APB) 경기와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제외하고 전국체전 등 국내 대회에 출전하면 안 된다는 게 징계 해제의 전제다.

이는 사실상 신종훈을 징계했던 AIBA의 입장에서 전혀 변한 것이 없는 내용이다.

앞서 AIBA는 지난해 11월 1일 중국에서 열린 APB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같은 시기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했다는 이유로 신종훈에게 1년 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신종훈이 APB 경기를 뛰기로 계약을 맺었는 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 징계의 근거다.
하지만 신종훈의 주장은 다르다.

2012년 최초 계약 이후 AIBA와 WBA 등 기존 프로복싱 국제단체가 다툼을 벌이면서 APB경기가 열리지 못하며 파행을 겪자 신종훈과 대한복싱협회, 국제복싱협회는 2014년 4월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만나 다시 계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당시 국제복싱협회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재계약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신종훈은 모든 것을 잊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고자 지난해 5월 전지훈련 겸 대회 참석차 독일로 떠났다.

이 때 신종훈은 당시 갑작스럽게 독일로 날아온 AIBA 관계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번복이 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APB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신종훈은 이후 줄곧 "사인은 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고, 2012년 최초 계약 당사자 중 하나인 대한복싱협회의 도장도 없어 이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전국체전같은 국내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징계를 받은 뒤 '징계의 근거가 된 계약서는무효'라는 입장을 지금까지 일관성있게 견지해 온 신종훈으로서는 22일 대한복싱협회가 내놓은 '조건부 징계 해제' 제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상의 항복 요구'일 수 밖에 없다.

신종훈 입장 정리 중…중대 결정 임박

신종훈은 이 문제를 두고 지난 20일 대한복싱협회 관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APB에 출전하면서 국내 경기도 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최근 국가대표에 선발된 함상명(19)은 APB를 뛰면서도 국내 대회에 모두 출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함상명은 되는 데, 신종훈은 안된다는 것.

그러자 신종훈은 그 자리에서 사실상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동행했던 인천시체육회 관계자들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자"며 신종훈을 달랬다.

이후 신종훈이 어떻게 마음의 결정을 내릴 지 고민하고 있는 과정에서 대한복싱협회는 22일 조건부 징계 해제를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사실과 달리 마치 신종훈의 징계가 아무 문제 없이 풀린 것처럼 알려지기 시작했고, 대한복싱협회가 발표한 내용만을 중심으로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자 신종훈은 이에 대한 입장 및 향후 거취 표명을 분명히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신종훈은 24일 담당 변호사를 만나 충분한 상의를 한 뒤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신종훈측 관계자는 "신종훈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본인의 입장 및 향후 거취까지 포함해 중대한 결론을 내린 뒤 곧 이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복싱협회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함상명은 모범학생이고 신종훈은 불량학생이다. 그래서 함상명은 특혜를 줘 다른 학교 수업(국내 대회)도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반면 신종훈은 학교(AIBA)에서 정학(징계)을 당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노력해서 이를 풀어주고 학교에서 다시 공부(APB)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 주려는 것"이라며 "이런 우리의 노력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건 신종훈의 판단이고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