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다섯 시에 들어온단다. 그때까지 월암리로 들어가 좀 쉬자. 배고프디?』

 인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관장은 옷 보따리 속에 함께 싸온 주먹밥을 꺼내 허기부터 쫓았다. 인구가 물었다.

 『출고지도서는 뗐습네까?』

 『다섯 시에 오면 준비해 놓기로 손을 써놓았었어. 공화국에서 뇌물 고여 안되는 일 있간?』

 운전석에 앉아 인구와 같이 주먹밥을 씹으면서 사관장은 혼자 웃었다. 인구는 주먹밥 두 덩어리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량정사업소가 와 이렇게 조용합네까?』

 『전기 들어오면 밤샌다고 모두 오침 중이래. 큰일이야. 기업소는 가는 데마다 자재난과 전력사정 때문에 난리구. 어쨌든 부대에도 전화해 놨으니까니 좀 쉬자우.』

 인구는 차를 돌려 양정사업소를 나왔다. 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니까 월암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시계는 어느덧 정오가 가까웠고, 햇살은 달아올라 온몸을 더욱 녹작지근하게 만들었다.

 운전석에 앉아 나눠 먹은 주먹밥이 식곤증까지 몰고 와 차를 모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사관장은 그 사이 잠이 들어 드렁드렁 코를 골고 있었다. 우측 차 문에 고개를 기대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사관장을 보니까 식곤증이 더 심하게 밀려오는 것 같았다.

 인구는 월암리에서 흘러나오는 실개천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실개천으로 내려가 세수를 하면서 식곤증을 쫓았다. 사관장은 그때까지도 세상 모르게 코를 골고 있었다.

 인구는 사관장의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소리 없이 웃었다. 제대 날짜를 받아놓고 있는 고참 경리사관이라서 그런지, 사관장은 이제 군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운전석 옆에 앉기만 하면 꾸벅꾸벅 졸았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사람 모양 늘 배포가 두둑해 보였다.

 정말 오늘 점심에도 이밥에다 고깃국을 먹을 수가 있을까?

 인구는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면서 월암리 그 여성동무의 집을 생각했다. 사관장이 식량을 수령하러 나와 입쌀마대나 군수용 옷가지 따위를 떨어뜨려주고 닭도 잡아먹고 토끼도 잡아 볶아먹고 술도 얻어 마시면서 하룻밤씩 너끈하게 쉬어 가는 그 집은 얼굴이 각꾸정하게(예쁘게) 생긴 젊은 과부 집이었다.

 원래는 전연지대 순찰 중에 지뢰가 터져 영예군인이 된 사관장 친구의 안해였는데, 남편이 자살하자 가내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관장과 깊은 정을 통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혼담까지 오고가는 사이라 인구는 그녀를 지칭할 때마다 깍듯하게 성(性)까지 붙여 「강영실(姜英實) 동무」라고 불렀다.

 강영실 동무의 집은 다복솔이 몇 그루 서 있는 월암리 서쪽 언덕 밑에 있었다. 담벽을 하얗게 회칠한 일자형 단층주택들이 남새밭을 끼고 드문드문 서 있는 공터 옆에 자리잡고 있어 우선 차를 갖다대기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