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45)다담(茶談)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
이규보가 남긴 차(茶) 관련 시문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차의 각성 효과와 소갈 효과, 심신 수양에 대한 작자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졸음을 쫓아내고 갈증을 없애는 것은 물론 번뇌를 사라지게 한다는 고백적 진술에서 이런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茶) 관련 시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뭔가를 사라지게 하는 효과보다는 차를 매개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다담(茶談)이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인데, 이야기에 대한 청자 및 화자가 차를 매개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유자(儒者)이되 불교에도 소양을 지녔던 작자는 다담을 통해 여러 승려들과 교유했다.
 
 <또 운(韻)을 나누다가 악(岳) 자 운(韻)을 얻다(又分韻得岳字)>
 卜居城東蝸一殼(복거성동와일각) 성의 동쪽 달팽이 껍질 같은 데서 기거하며
 怯寒無奈縮頭角(겁한무나축두각) 추위 두려워 어찌할 수 없어 머리 파묻고 지내네
 偶然乘興閑出郭(우연승흥한출곽) 어쩌다 흥이 나서 성 밖에 나가면
 三尺雪深寒蘸脚(삼척설심한잠각) 석 자의 깊은 눈에 다리가 묻히네
 來打禪扉聲剝剝(내타선비성박박) 와서 선방의 문을 툭툭 두드리니
 警咳一聲虛谷答(경해일성허곡답) 한마디 기침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치네
 入門眩怳見臺閣(입문현황견대각) 문안에 드니 대각을 본 듯 아찔하고
 似見小空隨善覺(사견소공수선각) 마치 소공을 보러 선각을 따르는 듯하네
 隔林吹火棲鳥落(격림취화서조락) 숲 사이에서 불 지피니 깃든 새 떨어지고
 渴漢求茶泉欲涸(갈한구차천욕학) 목마른 사람 차를 찾으니 샘물이 마르려 하네
 一夕忘懷這裏樂(일석망회저이락) 생각건대 하룻밤 이 안에서 즐겁게 지내는 게
 大勝三笑遊廬岳(대승삼소유여악) 여산에서의 세 번 웃는 것[三笑]보다 훨씬 낫겠네

 
눈이 많이 내린 날 저녁 무렵, 작자는 선방(禪房)을 찾아갔다. 시문에 나타난 대로 '목마른 사람이 차를 찾아 온' 것이었다. 작가에게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갈증이 아니라 정신적 갈증이다.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선방을 찾았고 승려와의 다담(茶談)을 통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샘물이 마르려 하네'는 다담이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는 것은 가리킨다.

스님과의 다담이 어찌나 즐거웠는지 작자는 '여산에서의 세 번 웃는 것[三笑]보다 훨씬 낫겠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말로, 진(晉)의 고승(高僧) 혜원(慧遠)은 평소 타인을 배웅할 때 절대로 호계(虎溪)를 넘어가지 않았지만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면서 대화를 하다가 호계를 지나친 줄 몰랐기에 서로 크게 웃었다는 고사이다. 작자에게 스님과의 다담은 삼소(三笑)의 고사를 뛰어넘는 즐거운 일이었다.
 
 <찬 수좌의 방장에 제하다(題璨首座方丈)>
 雙眉無處展(쌍미무처전) 두 눈썹 펼 곳 없으니
 一笑爲誰開(일소위수개) 누구와 함께 한 번 웃어볼까
 日欲三竿上(일욕삼간상) 해가 삼간쯤 올라온 무렵
 房尋十笏來(방심십홀래) 방장을 찾아 십 홀쯤 왔네
 釵頭頻落灺(채두빈락사) 차두(釵頭)로 자주 불똥 떨어뜨리니
 品字漸成灰(품자점성회) 품자(品字)는 점차 재가 되었네
 山室茶談足(산실다담족) 산방의 다담이 만족스럽기만 하니
 何須索酒杯(하수색주배) 어찌 술을 찾겠나

 
작자는 자신을 향해 눈썹을 펴고 환하게 웃어줄 대상이 필요했다. 십 홀쯤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찬(璨) 수좌의 방장이 있었다. 서로 눈썹을 펴고 웃음 짓는 관계였기에 차(茶)가 빠질 수 없었다. 찬 수좌와의 다담은 등불의 심지를 여러 차례 정리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딱히 술을 찾을 필요 없이 '산방의 다담이 만족스럽기만 하'였다.

다담(茶談)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차를 말고 달이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행위는 모두 정적(靜的) 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다담은 명령이나 고함이 오가는 동적(動的) 상황과 거리가 있는 만큼 눈썹을 펴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분위기에 적합하다.

여기에서 웃음은 타인을 의식한 가짜 웃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 그대로 반영된 진짜 웃음이다. 가짜 웃음을 만들려고 근육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인위적인 것과 무관하게 내면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드러나야 진짜 웃음이다.

결국 진짜 웃음은 차를 매개로 한 소통에 진정함이 묻어날 때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