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연 다지음한글구성성명학회회장
▲ 예지연 다지음한글구성성명학회회장

얼마 전 처음 방문한 여인이 필자의 성명학칼럼을 보고 왔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야 팔자 사나워 그간 힘들게 살았지만, 내 자식 만큼은 제 팔자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좋은 이름으로 지어 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이 어떠한가? 감명부터 받고 나서 짓기 마련인데, 여인은 어디서 이름 나쁘단 소릴 들었는지 개명부터 의뢰했다. 그렇지만 93년 계유(癸酉)생 장규혜의 이름을 풀어보니 재물복이 있고 남편 덕이 있는 이름이었다. 따라서 굳이 개명 하지 않아도 된다.

"흠잡을 데 없는 이름인데 무엇 때문에 개명……하려구요?"의아해 물었더니."매사 하는 일이 중도에서 막히고, 말년에 고통이 심하고, 부부간에 서로 이별하고 불구 단명할 이름이라 하던데요?"하며 이유를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년에 중길격으로 낙마절골이라 아주 흉하고 장년은 박약격이라 심신이 박약하고 파재가 끊이지 않는 이름이란 소릴 덧붙였다.

그렇지만 딸아이에 이름은, 우선 성품이 담백하고 남을 가엾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있을 뿐 아니라 학구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어 무난한 이름에 해당된다.

필자는 역학을 수십년 연구한 역학자이지만 얼마 전 목회학석사학위를 받았다. 막상 학위를 받고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아침잠이 없다보니 새벽 공기를 마시며 새벽기도 가는 것을 즐겨했다.

학창시절엔 대학선교회인 Hccc 활동을 비롯해 주일예배도 빠짐없이 다녔었다. 그렇지만 결혼과 동시, 교회로 향하는 발길은 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주여! 를 입에 달고 사시는 시부모님 간청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이후 이상하게 교회 가기가 싫었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삶의 고단함을 술로 달래는 습관이 생겼다.

어쨌든 젊은 시절엔 전도사가 되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위해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고 다니면서도 성경적 해석엔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보니 역학에 심취해 오랜 시간 지칠 줄 모르고 이러한 학문에 파고들었다. 이렇듯 삼십 여년 가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길 역학에만 매달리면서도 진리란 무엇인가? 에 대한 화두는 놓지 않았다.

이랬든 필자가 이제는 목사가 되었다. 아니 지금 개척교회를 계획하고 준비 중에 있다 보니 요즘의 생활은 그야말로 무엇에 쫓기듯 경황없이 바쁘다.

이렇듯 수십년 연구해 온 역학이란 학문을 한순간 미련도 없이 전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으로 강을 건넜다고 생각해서다. 우리가 진리의 강을 건너려면 뗏목(학문)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고 나서도 뗏목이 아깝다고 짊어지고 가려한다. 버려야 하는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한치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동성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한글구성성명학 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후세들을 위해 세상 속에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엔 앞서 장규혜의 이름에서 언급했듯이 상담을 하다보면 괜찮은 이름을 갖고도 한문획수에 의해 본명보다 못한 이름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글구성성명학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딸아이의 운명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늘 안타까운 것은 어렵게 개명해 호적에 올린 이름이 당사자의 운명에 흉하게 작용할 때가 가장 마음 답답하다. /예지연 다지음한글구성성명학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