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인천대 교수
▲ 김철홍 인천대 교수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과 원인조차 규명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전국을 메르스의 공포에 휩싸이게 하고도, 그 흔한 담화문 한 장 없이 여전히 권력의 병풍 뒤에 숨어 남 탓만 하고 있는 현 청와대 주인이 지난 2004년 고 김선일씨 피랍사건때 국가와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일갈하신 말씀이시다.

남 탓은 쉬워도 자기 탓은 어려운 법이지만, 정말 이번 정권은 답이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이게 정상적인 나라이며,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는 나라인가? 집권기간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온 나라를 동서는 물론 남북으로 갈라놓고, 세대간, 계층간의 골은 회복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5월20일 첫 번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후 매일이 고비이고, 매주가 분수령이라고 하였지만, 환자와 사망자, 격리대상자는 매일 늘어만 가고 있다. 학교는 휴업이고, 공동체는 붕괴되고 있다.

대중교통 안에서 기침만 하여도 의심의 눈초리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국민들은 불안에 떨며, 더운 여름의 입구에서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애꿎은 손만 닦고 또 닦으며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다행이 서울시장의 정보공개와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 대응, 그에 따른 정보공개여론에 밀려 더 이상 사태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정부는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무려 보름 만에 감염병원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게 되었다. 그것도 청와대가 먼저니 서울시가 먼저니 하는 한심하고 치졸한 선두다툼을 벌이면서 말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과 종편은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하며 누가 메르스의 수혜자인지를 셈하고 있으니 낙타가 웃을 일이다. 급기야는 6월 14일 홀연히 발족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듣보잡' 단체에서 서울시장을 유언비어 유포 등의 혐의로 고발하자 기다렸다는 듯 검찰이 수사에 나선다는 언론보도다. 정말로 점입가경이다.

방송에 나와 공기를 통해 전파가 되고 안 되고를 따지는 전문가들을 보니 말 그대로 한심하다. 병명 자체가 호흡기증후군이라는 것은 사람이 호흡기를 통해 그 바이러스를 호흡하게 되어 발생하는 것이고, 그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얼마나 멀리 퍼져 나가는가 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이다.

2003년 아시아를 중심으로 창궐한 사스는 그 공기 중 전염의 정도가 메르스와 비교하여 훨씬 빠르고 범위가 넓었으나 치사율은 낮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세계보건기구 WHO도 지적하였듯이 정부의 초기대응의 실패, 병원명단 미공개 등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선제적 대응의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종편은 간병인과 병문안 등 한국의 의료문화 운운하며 이번에는 국민 탓으로 몰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에서 국가를 넘어선 무소불위의 재벌병원의 문제는 다음에 다루더라도, 전체 확진자의 절반이 서울삼성병원에서 발생한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국가가 뚫렸다는 관련자의 국회증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삼성에게는, 뚫린 입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원인은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와 정보 미공개에 일차적 원인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왜곡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의료시설의 비율이 병상수 기준으로 OECD 평균인 77%에 비해 겨우 10% 전후에 해당하는 현실이 공공의료의 낙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민영화와 의료관광 등 국가가 앞장서서 의료상품화를 부추기면서, 의과대학 졸업자의 대다수가 공공의료분야의 기초학문보다는 소위 돈이 되는 성형과, 피부과 등으로 몰리면서 의료의 공공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런 의료상품화에 앞장선 정권과 자본, 나팔수 언론이 나서서 질병과 전염병은 개인의 무능과 재수 없음으로 치부하는 세태가 낳은 필연적 결과이다.

또한 수도권과 대도시에 의료 전문 인력의 약 70%가 밀집되어 있으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최고의 병원임을 자부하던 서울삼성병원과 수도권에 환자가 집중된 것은 그만큼 우리 의료현실이 이익이 되는 전공분야 위주이며,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능력도 철학도 의지도 없는 3무(無)정권이 국민과 나라를 불안하고, 고달프고, 희망도 없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민의를 왜곡하고, 고집부리고, 억누른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보여주고 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격언이 여전히 유효한 대한민국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경험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는가! 이제 함께 일어나 준엄한 역사의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김철홍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