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농협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

이제 책이라 하면 '종이책'과 '전자책'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미래는 어떠할까?

책은 인간의 생각을 집대성한 가장 오래된 형태의 보존물이다. 이 말에서 처럼 책이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생각의 집대성'과 '보존물'이다. 먼저 '인간의 생각의 집대성'으로서의 책이다. 책이란 인간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기록에의 집착은 어찌보면 인간의 종족보존의 본능과 닿아 있다.

책은 생각보존의 본능의 결과물인 것이다. 현재의 사상과 경험들을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후대에 이어지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인류 지성의 커다란 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와 많은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책이 가지는 본질적 정신적 의미와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보존물'로서의 책이다. 이것은 책의 물질적 기능성에 대한 부분이다. 생각의 영속을 위해 '책'이 만들어진 본질적 정신적 부분과 같이 '책'이 가지는 물질적 기능으로서의 영속성이다. 머릿속의 생각이나 말이 아닌 구체적이며 유형화된 것으로서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죽더라도 그 책은 책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 책을 통해 그 작가의 사상과 경험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재료의 영구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정신의 영속성을 물질화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시대의 흐름 앞에 '종이책'도 역사의 유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종이책이 오랫동안 인간의 기억에 남아있다면 말이다. 인간의 기억들이 모여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보다 강한 기억이 살아 남으리라 본다.

'전자책'은 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그 기억이 한 번의 짧은 이미지와의 접촉으로 연소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종이책'은 어떠한가? 옆에 친구처럼 끼고 다니며 책장을 넘길 때 묻은 손때의 흔적, 그 책의 특유의 냄새, 자면서 뒤척이다 책장의 책이 떨어져 이마에 떨어진 기억 등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몸에 부딪쳐 아파하고 했던 이 모든 기억들이 '종이책'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 '잉크하트' 대사 중엔 "어릴 적부터 내 머리맡 서랍 속에 함께하는 그 빛바랜 책장들이 나의 10대와, 20대와 30대를 대신 이야기해주겠지" 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종이로 전하는 감동의 영역대는 긴 시간을 반영한다. '종이책'은 인간과 함께 할 것이다.

인간이 가치를 지향한다면, 그래서 남기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분명 '종이책'일 것이다. 건축사진의 대가 로버트 폴리도리가 한 말이 맞다면 말이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라고"  /이정수 농협경주환경농업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