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41> 이규보와 다시(茶詩)

차를 지칭하는 다(茶)라는 글자는 풀[艹]과 여(余)의 결합이다. 여(余)는 독음(讀音)을 위해 견인된 글자이다.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최초의 다인(茶人)은 전설에 등장하는 신농(神農)이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신농은 100 가지의 풀을 먹다가 어느 날 72종류의 독에 중독됐지만, 차를 먹고 독을 풀었다(神農嘗百草 一日遇七十二毒 得茶乃解, ��神農本草經��)"고 한다. 독초(毒草)의 성분을 차(茶)로 해독했던 셈이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50여 수에 이르는 다시(茶詩)가 등장한다. 고려시대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다인(茶人)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한시는 제목이 다소 길게 표현된 <앵계(鶯溪)에 거처를 정한 뒤 우연히 초당(草堂)의 한적한 풍경과 두 집안이 서로 오가던 정의를 함께 서술하여 서편의 이웃 양 각교(梁閣校)에게 주다>이다.
 
 ……
 傍桃栽翠竹(방도재취죽) 도화 옆에 푸른 대나무를 심고
 剪棘護芳蓀(전극호방손) 가시나무 베어내어 꽃다운 향풀을 보호하였네
 漸作顚茶陸(점작전다육) 차에 도취했던 육우(陸羽)를 닮아 가고
 甘爲學圃樊(감위학포번) 밭 가꾸기를 배우려던 번지(樊遲)가 되려 하네
 沈酣消日月(침감소일월) 거나한 취흥(醉興)으로 세월을 보내며
 曠坦老乾坤(광탄노건곤) 광탄한 심정으로 이 세상 마치려네
 ……
 箔外風微颺(박외풍미양) 발 밖엔 미풍이 불지만
 簷前日正暄(첨전일정훤) 처마 앞에는 해가 한창 따스하네
 鶯調啼柳舌(앵조제류설) 꾀꼬리 노래 소리 자유롭고
 蝶雪戀花冤(접설연화원) 나비는 꽃 그리워하며 원을 풀었네
 來往君何憚(내왕군하탄) 그대 부디 이곳을 찾아 주게
 猶堪避世喧(유감피세훤) 시끄러운 세상 원만히 피할 수 있다오

 
눈에 편안한 조경을 위해 대나무를 식재(植栽)하고 가시나무를 전지(剪枝)치기를 했다. 산들바람이 불지만 햇볕이 따스한 어느 날, 꾀꼬리는 자유자재로 지저귀고 나비는 꽃 위에 앉았다. 청각이건 시각이건 촉각이건 모든 게 조화로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작자는 "시끄러운 세상 원만히 피할 수 있"는 공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조화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차에 도취했던 육우(陸羽)를 닮아 가고" 농사일을 배우려 하던 번지(樊遲)인들 어떠하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논어�� 자로). 육우는 ��다경(茶經)��을 저술했는데, 그 안에는 차에 관한 모든 내용이 있었기에 차를 파는 사람들이 그를 다신(茶神)이라 불렀다.

작자가 ��다경(茶經)��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은 다음의 시(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강가 마을에서 자다(宿瀕江村舍)>
 江邊放浪自忘形(강변방랑자망형) 강가에 방랑하며 스스로 형체를 잊고
 日狎遊鷗傍渚汀(일압유구방저정) 날마다 갈매기와 친하게 물가로 가네
 散盡舊書留藥譜(산진구서류약보) 묵은 서적은 다 흩어지고 약보만 남았지만
 檢來餘畜有茶經(검래여축유다경) 남은 것들을 따져 보니 ��다경��이 있네
 搖搖旅思風前纛(요요려사풍전독) 흔들리는 나그네의 마음은 바람 앞의 깃발 같고
 泛泛孤蹤水上萍(범범고종수상평) 떠다니는 외로운 종적은 물 위의 부평초라네
 寄謝長安舊知己(기사장안구지기) 장안의 옛 친구에게 부쳐 사례하노니
 客中雙眼爲誰靑(객중쌍안위수청) 객중의 두 눈이 누구를 위하여 푸르렀는지

 
 
강변을 따라 갈매기와 벗하던 작자는 소지품에 ��다경��의 내용 중에서 차의 약리적인 효능에 관한 부분만 발췌해 놓은 '약보(藥譜)'가 있었다. 차(茶)는 종류 및 제조법에 따라 응급상비약의 역할을 했다. ��다경��에는 차의 근원, 도구, 제조법, 그릇, 생산지, 약리작용, 그림 등 차(茶) 전반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기에 작자가 그것을 휴대하고 다녔던 것이다.

작자는 강가 마을에서 혼자 묵은 게 아니었다. 속된 사람을 만났을 때는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 경멸의 뜻을 보인다는 백안(白眼)이란 글자가 있는데, 이와 반대로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검은 눈동자로 반가움을 드러낸다는 청안(靑眼)이란 고사(故事)를 통해 보건대 마음에 맞는 반가운 동료들을 만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차(茶)가 빠질 수 없기에 한켠에서는 차를 끓이고 있었을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