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사진가

경남기업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 한 장이 어렵사리 임명된 이완구 국무총리가 며칠 만에 물러나게 되었으며, 홍준표 경남지사가 검찰의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건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메모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모두 여당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메모에 적힌 사람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마음 편할 리 없을 것이다.

▲ 최병관 사진가
그 사건을 두 가지로 추측해보았다. 첫 번째가, 청탁을 단 칼에 거절당해 앙심을 품고 너 한번 죽어보아라, 두 번째는 메모에 적힌 사람들이 더럽고 치사한 현금뭉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야당 정치인들의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 누구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어딜 가나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메모에 적혀있지 않다고 해서 하늘에 맹세할 만큼 깨끗한 정치인이 얼마나 있을까?

생목숨을 끊은 사람을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해도 오죽하면 죽음으로 항변했을까. 그러나 언론을 통해서 바라본 경남기업의 전 회장이야말로 비뚤어진 기업의 운영에서 비롯된 몰락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오직 기업에만 몰두했다면 기업의 역사와 명성이 더욱 빛났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불러온다. 그래서일까. 죽은 사람을 동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감을 불러오는 원인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뿌리 깊게 뻗어있는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우선먼저 척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 대통령은 두려울 게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만큼은 부정부패의 쇠사슬을 끊어 용광로에 녹여버리지 않으면 기대했던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역사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딜가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세월호사고로 인해 경제는 멈추었으며 너무 살기가 힘겹다는 소리가 오늘을 슬프게 한다. 왜 이렇게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가는 대나무가 그리운 세상이 되었을까.

예부터 대나무는 곧은 선비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대나무에 비유할 만큼 청렴하고 옳 곧은 정치인과 공직자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상은 변해도 대나무만큼은 변함없이 사계절 푸르고 곧게 뻗어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대나무를 직접 보고 싶었다. 큰 맘 먹고 광주행 KTX열차에 몸을 실었다.

멀게만 생각했던 광주가 광명역에서 1시간30여분 걸려서 도착하는 놀라운 세상이 되었다. 모든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오직 정치는 후퇴하고 있다. 국민은 9단인데 정치인들은 1단도 못되는 정치를 하고 있다.

광주 송정역에서 승용차로 40여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담양의 '죽녹원'이었다. 그곳은 온통 대나무로 덮여있었으며 대나무 향이 진동을 했다. 답답했던 가슴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짐을 푼 곳은 전통 방식으로 지은 소나무 한옥이었다. 창문을 여니 모두가 쭉쭉 뻗은 대나무뿐이었다.

바람에 부딪치는 대나무 잎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합창을 하며 반겨주는 듯 했다. 촘촘히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대나무는 녹색에서부터 엷은 회색에까지 여러 가지 색이었다. 대나무가 태어난 순서를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대나무 숲길 따라 걷는 황톳길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평온함이었다.

길마다 안내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사색의 길, 선비의 길, 철학자의 길, 죽마고우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등 모두가 대나무와 연관이 있는 의미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먼저 선비의 길을 걷기로 했다. 옛 선비들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쪽 같은 선비가 사라진 요즘 세상에서 대나무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나무 같은 정치인, 대나무 같은 공직자가 넘쳐나는 세상이 언제쯤 찾아올까? /최병관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