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수 인천 동구청장
▲ 이흥수 인천 동구청장

1991년부터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7번의 지방선거가 있었다. 30대 초반부터 두 번째와 세번째 지방선거(1995년, 1999년)에서 당선되어 구의회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구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3회, 6년 동안을 그 직을 수행하였다.

그 당시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초창기 구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 신분이면서도 오로지 주민을 위하고 민의를 대변하며,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구청장에게 엄하게 따질 것은 따지면서도 구청장이 소신껏 구정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국회의원에게 충성할 필요는 없었다. '주민의 머슴'으로 '잘해보자'라는 자의식이 충만했다. 구의원의 경력을 기반으로 하여 나중에 시의회에 까지 진출하였다.

한 차원 더 높은 꿈을 이루고자 구청장직에 도전하기는 하였으나 한차례 낙선의 시련을 겪고 나서 작년 6·4 지방선거에서 주민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지방자치라는 현장에 뛰어든 지 꼭 19년만의 일이다. 구·시의원의 경험은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낙후된 동구를 주민에게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매분초를 아껴 쓴다. 벌써 취임 1주년이 다 되간다. 동구발전이라는 과제는 구청장이 혼자서만 짊어져서 될 일이 아니다. 현행 지방자치제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별개의 기관으로 대립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다. 양자는 지방자치의 두 바퀴인 것이다. 동행(同行)과 동고(同苦)가 필요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취임 후 그동안 구의회를 존중하고 파트너십으로 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왔다.

최근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금년 첫 번째 추경 예산안에 대하여 심의가 거부되거나 대폭삭감된 것이다.

먼저, 3월에 열린 구의회 임시회에서는 구청장이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심의를 아예 거부하였다. 구의원 중 두 분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주도한 것이다.

그 배경은 3월5일, 화도진에서 있었던 대보름행사에서 발단되었다. 시의회 의장의 축사 중에 덕담차원에서 한 '특정인물'의 소개를 문제 삼아 현장에서 옥신각신하였다. 정계진출설이 나돌고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구의원 두 분은 '특별한 분'과는 충성관계에 있는 처지였다. '특정인물'을 '특별한 분'의 경쟁자로 여기고 정치적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구의원들이 공과 사를 구분 못 한다'라는 질책성 여론이 일었다 4월에 임시회가 다시 열려서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구청장이 요구한 예산안 120억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62억원을 삭감한 것이다. 동구가 살길을 찾기 위한 관광개발이나 도시재생, 공해방지 등과 관련된 예산이다. 국·시비를 지원받은 예산, 관내 기업체에서 기부한 예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24년전 구의회의 개원 이래 크고 작은 갈등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도를 넘은 적은 없었다.

예산안에 대한 심사권은 구의회의 고유권한이다. 누구도 토를 달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으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예산이란 주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주민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예산삭감의 피해는 주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권한행사가 아니다.

도시여건이 열악한 동구이다. 인구는 계속하여 감소한다.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남이 한발자국 뛸 때 열 발자국을 뛰어도 모자란다. '어, 어!' 하는 순간에 임기 4년이 다 지나가고 만다.

또다른 예산삭감의 명분은 '사전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이다. 구의원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전문위원에게 물어도 봐야 한다. 바쁜 구간부들을 수시로 불러내어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말 안 들으면 예산을 다 깎아버린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봉사가 아니라 군림하려든다. 구의회의 견제와 감시의 기능은 당연하다.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당간에 이해관계도 무시 못한다. 다함께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유권자에게 '열심히 일하겠다',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라고 수없이 맹세하고 고개 숙여 선출된 우리가 아니던가.

여성 한분이 내 하소연에 댓글을 달아주었다. 강한 감전(感電)이 왔다. 철학자 칼 힐티(Carl Hilty)의 말이란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은 내가 나의 사명감을 찾은 그 날이다'/이흥수 인천 동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