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시인  
▲ 김학균·시인

학창시절엔 별로 없던 책이 급작스럽게 늘어난 것은 직장에 들어가고부터 이다. 봉급을 수령하자마자 달려갔던 동대문과 배다리 헌책방, 한 권 두 권 늘어나는 책을 보면 무언가 모를 뿌듯함으로 젖어 몽상에 빠져들기 시작했었다.

연구하는 교수도 아니고 꼭 필요하다기 보단 읽지 않으면 무언가 뒤떨어져 사는 기분이 들어 책을 사게 된 것이다. 책을 사면서 내가 뭔가 모르게 우월하고 헌책방의 주인에게 어줍잖은 고객으로서의 대접이 조금은 작용했었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적인 냄새도 냄새지만 헌책의 또 하나 숨은 매력이라면 'OO가 보내는 책' 그리고 받는 사람의 서명, 그리고 그 뒤 'OO가 OO에게 보낸 책, 몇 년, 몇 월, 몇 일 김학균이 OOOO에서 사다.' 라고 써 넣는 것으로 인간 띠 잇기로 내가 사기 전 두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듯 방으로 넘치고 거실을 침범하고 그것도 모자라 빨래 널던 베란다로 침범하니 아내는 질색팔색 급기야는 꼴도 보기 싫으니 책 다 가지고 나가라는 구호를 외쳐댄다.

솎아내는 책은 주로 되지 않는 필자들로 발행되는 월간지들이며 필요에 의하여 산 책들은 버리질 못하고 지금껏 쌓아놓고 있다. 유명세 못하는 문필가도 이럴진데 교수들은 어떨까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들의 꿈은 거개가 다 공간을 하나 빌려 책을 모조리 가져다 놓고 작은 자기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 그러나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공상에 끝나는 꿈. 대개는 도서관(대학,공공)에 기증하기를 원하지만 요즘은 반기는 일없이 도리어 푸대접이다. 설령 기증된 책을 보러갈라치면 창고에 쌓아놓고 쓰레기 취급을 하니 기증자를 한없이 슬프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에 가끔 배다리 헌책방을 찾는다. 딱히 갈만한 곳이 없어 산보 삼아 간다. 이것저것 책장을 넘기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고 별스러운지 몰라도 헌책의 냄새는 그리 싫지 않아서 간다. 책을 뒤지다 보면 가끔 아는 분의 장서인이 찍힌 책을 보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잘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물론 돌아가신 분 이라면 다시 한번 명복을 비는 계기도 되고 말이다.

어쩌다 가방속에 사 넣었던 책을 꺼내면 보지도 않을 책 무얼 그리 사냐고 나무라며 있는 책 어쩔거냐고 또 앙탈이다. 정말 있는 책 한 두권도 아니니 은근히 걱정이다. 때가되면 어느 한 순간 쓰레기장으로 내몰릴 책들을 생각하면 눈감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생각한 결론, 필자 같은 사람 몇몇이 모여 헌책방 공동창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묘안, 실현 가능성은 50:50이지만 괜찮은 생각이라는 결론으로 70을 넘긴 노년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책방에 앉아 책을 보며 손님이 온 책을 찾아주고 수 많은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에 안 팔린다고 안달복걸 할 일도 없으니 좋고, 어쩌다 잔돈 뚝 잘라 배다리, 송현, 송림, 선술집 찾아 대포잔 잣거니 주거니하며 하루가 가니 이 아니 행복일까.

기증한다고 한들 받아주는 도서관 없고 창고에 쳐박혀 폐지로 떠나갈 운명이라면 헌책방의 서가에서 또 다른 새 주인을 찾아가는 중시내비 역할로 나서는 것이 백번 천번 옳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 저사람 지인들이 내 놓는 책으로 책방이 꽉 찰 것은 분명하고. 누구 누구가 연 헌책방이라는 입소문에 고사지낼 일 없으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며 어느 유명한 시인의 고서방처럼 문인들의 아지트로 삼아 일석삼조가 아니라 일석수십조가 되고도 남을 일, 배다리 헌책방의 역사는 또 쓰여 질 것이다.

예닐곱 남은 배다리의 헌책방 거리는 더 이상 그 옛날처럼 번성하질 못하고 있다. 그래도 배다리의 인문학은 이어져 가야하건만 두고볼수록 안타까웁기 그지없다.

책의 수도 인천이 안고 있는 숙제도 이곳에 있으련만 문제도 제시하고 있질 못하는 것 같다.
헌책방 주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생,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 좋겠다. 같이 갈 거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