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명의 일꾼들이 다가와 입쌀 3톤을 실어 주었다. 사관장은 출고책임자가 내민 확인서에 수표(서명)했다. 그때 출고책임자가 귀를 빌리며 낮게 속삭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들이 몰래 빼돌린 쌀 세 마대만 양정사업소 밖으로 실어내 달라고 했다.

 사관장은 빙긋이 웃었다. 그가 저울질을 지켜보지 않았으면 이들은 최전방에 보낼 군인들의 입쌀도 틀림없이 손을 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괘씸했다. 그리고 공화국은 도둑과 피해자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권이 희박한 사회이므로 수단껏 먼저 챙기는 자가 임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다음에 입쌀을 실으러 올 때도 이들은 특별대우를 해줄 것 같았다. 사관장은 들어주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오실 때도 잘 해드리갔습네다. 한번 눈감아 주시라요.』

 『어디서 내려주면 되갔시요?』

 『월암리 숲길에 장마당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네다. 모자를 벗어 흔드는 동무한테 내려 주시라요.』

 『알았시요.』

 잠시 후, 사관장은 인구와 같이 양정사업소를 나왔다. 월암리 사민부락을 지나 숲길로 막 들어서는데 남자 두 사람이 길 가장자리로 나와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하는 행인들처럼 모자를 벗어 흔들어댔다.

 사관장은 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 밧줄의 장력과 묶음상태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차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피다 50㎏짜리 입쌀 세 마대를 떨어뜨렸다. 모자를 흔들던 남자들이 재빨리 마대자루를 숲 속에 감추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관장은 차에서 내려와 운전석으로 들어오며 차를 출발시켰다.

 『라체오락, 재밋었네?』

 차가 출발하자 사관장이 물었다. 인구는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든 채 얼버무리다 룡수동으로 들어가는 숲길로 운전대를 돌렸다.

 『아까 동무를 위해 애써준 에미나이들한테 입쌀이나 좀 던져주고 가자. 저기 숲 옆에 차 좀 세우라.』

 인구는 성복순 동무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는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이 꿈만 같았다. 그는 사관장이 시키는 대로 룡수동 숲길 옆에 차를 세웠다.

 『내가 차 위에 올라가서 마대를 내려 주갔어. 동무는 밑에서 받아 저기 숲 속에 던지라.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니까 차 전조등 끄고 빨리빨리 움직이라.』

 사관장은 다그치듯 차 문을 열고 적재함으로 올라갔다. 그는 다시 차의 밧줄을 점검하는 척 하면서 50㎏짜리 마대 여섯 개를 내려주었다. 인구는 밑에서 받아 숲 속으로 던졌다. 그때 강영실 동무와 성복순 동무가 눈웃음을 던지며 다가와 입쌀 마대를 받아갔다.

 『인구 동무, 이거 가지고 가시라요.』

 입쌀 여섯 마대를 다 던져주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는데 강영실 동무가 다가와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를 내밀었다.